만주내의 2대 국문판지(國文版紙)이던 신경(新京:지금의 長春)의 『만몽일보(滿蒙日報)』와 용정(龍井)의 『간도일보(間島日報)』를 통합하여 단일지로 발간하였다.
만주에는 일찍부터 150만 내지 200만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어 일제는 정책적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신문을 통해 언론통제정책을 단행하고, 정치구호로 내세운 만선일여(滿鮮一如)를 달성하고, 5족(五族 : 조선족·중국한족·만주족·몽고족·일본족) 협화(協和)의 도모를 꾀하고자 하였다.
사장에는 이용석(李容碩), 역대 고문에는 진학문(秦學文)·최남선(崔南善), 편집국장에는 염상섭(廉想涉)·홍양명(洪陽明) 등이 취임하였으나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