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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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평안북도 강계군 만포읍에 있었던 국경요진(國境要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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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평안북도 강계군 만포읍에 있었던 국경요진(國境要鎭).
내용

중국집안(集安)과 마주하고 있었으며 압록강 남안에 위치하였다.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있었고, 군인은 모두 1,237인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여진과 접하고 있는 까닭에 여진어통역관이 한 사람 배치되어 있었다. 중요한 진영 중의 하나였으므로 석성(石城)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둘레는 3,172자〔尺〕이었으며 높이는 5자〔尺〕이었다.

조선시대 군사상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봉수제(烽燧制)가 설치되어 전국적으로 중요한 직봉 5개선 중에서 서북방면의 내륙봉수가 시작된 곳이다. 만포진의 여둔대(餘屯臺)에서 시작된 직봉(直烽) 제3선은 의주ㆍ안주ㆍ평양ㆍ개성을 거쳐 한성(漢城)의 목멱산(木覓山: 지금의 남산) 봉수대로 연결되었다.

군사상 중요 지역이었던 만포진은 철도교통이 발달할 때 만포진을 종착역으로 하는 만포선이 개통되면서 교통의 요지로 바뀌었다. 특히, 압록강 상류지방인 원창ㆍ자성 지역에서 뗏목으로 떠내려 보내는 원목(原木)을 제재해서 철도를 이용하여 수요지로 공급하는 목재집산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만포진은 기능의 변천은 있었으나 그 중요성은 계속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 조선시대에 강계도호부에 속하였으나 행정구역의 변천과 함께 평안북도 강계군에 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경지대에 위치한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신한국지리(新韓國地理)』(강석오, 대학교재출판사, 1984)
『한국사(韓國史) 』-근세전후편(近世前期篇)-(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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