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6월에 창간되어 1939년 4월 통권 5호로 종간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김정기(金正琦)이다. 창간호는 A5판 38면, 3호는 B5판 20면이다. 맥사(貘社)를 돈암동에 두고, 총판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함경북도총판을 청진 소비아서점(蘇比亞書店)에, 평양총판을 문우당서점(文友堂書店)에 두었고, 간도 용정가문화사(龍井街文化社), 연길 문화서원(文化書院)에 각각 지사를 두었다.
4집은 임시 편집소인 청진에서 편집하였다. 1집에 김진세(金軫世)·함윤수(咸允洙) 등 15명의 17편, 2집에 민태원(閔泰瑗)·장만영(張萬榮) 등 19명의 22편, 3집에 이상(李箱)·임화(林和) 등 32명의 38편, 4집에 허월파(許越波)·강시환(姜時環) 등 29명의 38편, 5집에 장응두(張應斗) 등 15명의 27편, 총 110여명 14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잡지는 동인지의 성격을 지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유파(流派)를 내세워 제한하지도 않았다. “퇴폐적 본능, 무의식적인 단순한 인상(印象), 주정(主情)의 전달, 혹은 영감, 감상적 고백의 형태화시(形態化詩)에 반역해야 한다.”, “시는 늘 시대에 선행해야 한다.”, “우리는 시에 있어서 새로운 감성적 영역을 개척 확장키 위하여 의식적으로 주지적 활동에 의하여 비판정신을 파악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김진세의 「운명(運命)」·「기심기(飢心記)」(1호), 김남인(金嵐人)의 「종다리」(1호), 이석(李石)의 「이깔나무」(1호), 박남수(朴南秀)의 「행복(幸福)」(1호), 이상의 「무제(無題)」(3호), 임화의 「차중(車中)」(3호), 김상옥(金相沃)의 「모래알」(3호), 장만영의 「들꽃이 핀 두덕」(3호), 서정주(徐廷柱)의 「모(母)」(3호), 윤곤강(尹崑崗)의 「오열(鳴咽)」(3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