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副題)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본에 대하여 느낀 바를 진솔한 필치로 써 내려갔다.처음 쓰인 날짜와 장소는 1951년 8월 부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산에서 발행되던 「국제신보」에 연재되었다. 당시 일본잡지 「선데이 마이니치」에 실린 한국을 비하하는 대담 기사에 분노를 느껴 집필했다고 한다. 11월에는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개로 일역되어 일본의 『중앙공론(中央公論)』에도 실려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 이 수필은 『목근통신』(포켓판, 대구 영웅사)이라는 단행본으로 1952년에 발간되었으며, 『마이동풍첩(馬耳東風帖)』(1954)·『삼오당잡필(三誤堂雜筆)』(1955)·『희망은 아직 버릴 수 없다』(1965)·『건망허망(健忘虛妄)』(1966) 등에 계속 전재되었다. 1973년의 『목근통신(외)』(삼성문화문고 37)에는 “이것으로 마지막 결정판을 삼을 생각이다.”라는 필자의 서문이 함께 실려 있다.
내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모멸과 학대에 대한 항의, 일본인의 습성 속에 배어 있는 허위와 약점에 대한 예리한 지적,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 등이다. 소제목은 「미움과 친애의 두 진실에서」·「선데이 매일지의 기사」·「구린내 나는 나라의 출생품」·「제 욕을 제가 하는 바보」·「어느 쪽이 더 교활?」·「자유혼이란 그 한 마디」·「일본의 악」·「받는 민족에서 주는 민족으로」·「내 어머니는 레프라 (문둥병자)일지도 모릅니다」로 되어 있다.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34년간을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글은 일본인의 생리를 비판적으로 알리는 편지글 형식으로서 일본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작자는 스스로 도 자신의 문필 활동에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교과서에 실리거나, 최근까지 여러 번 개정 출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일본인과 결혼한 작자의 딸이 목사였던 남편의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를 하면서 같은 제목의 부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