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사가(思可), 호는 시우당(時雨堂) 또는 두일당(逗日堂). 목철성(睦哲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목희안(睦希顔)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목세칭(睦世稱)이며, 어머니는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 조격(趙激)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지평(持平)·시독관(侍讀官)·보덕(輔德)·교리·부응교 등을 역임하면서 관리들의 문란해진 기강을 확립할 것을 역설하였고, 흉년에는 금주령을 내려 곡식을 절약할 것을 강조하였다.
1558년 사간에 이어 1565년 공조참의를 거쳐, 청홍도관찰사(淸洪道觀察使)를 역임하였는데, 이때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사사로운 청탁을 거절하였다가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대사간에 기용되고, 이조참판·부호군 등을 거쳐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이조참판·도승지·좌윤·우윤을 거쳐, 1591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그 지휘를 우성전(禹性傳)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릉(宣陵)·정릉(靖陵)을 보살피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가 도중에서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