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시지(始之). 정언의(鄭彦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정척(鄭惕)이고, 아버지는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60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의 주구가 되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죽이려 하였으나 박승종(朴承宗)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1617년 다시 폐모론을 제기하여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데 적극 가담하였고, 다음해 부제학·대사성을 거쳐 1619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1621년 형조참판을 지내고, 1622년 부제학·동지의금부사로 있다가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역전되면서 원흉으로 지목되어 1623년(인조 1) 사형에 처해졌다. 동생인 의주부윤 정준(鄭遵), 집의 정도(鄭道), 대사간 정규(鄭逵)도 함께 사형을 받거나 귀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