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는 내의원(內醫院)과 전의감(典醫監)이 있었으나, 왕과 왕비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는 특별히 시약청(侍藥廳)과 의약청을 설치하여 담당자를 궁중에 상주하게 하여 투약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러므로 의약청은 필요에 의하여 그때그때 설치된 임시관청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의약청이 기록에 보이는 것은 1625년(인조 3) 12월로, 운궁(運宮)의 증세가 위중하여 의약청을 설치하고, 도제조 이하 3인의 실무자를 숙직하게 한 기록이다. 그 다음은 1674년(현종 15) 4월 왕비의 병환으로 의약청을 설치하고, 약방(藥房)에 김석주(金錫胄)를 참석하게 하여 약의 시투여(施投與)에 참여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1680년(숙종 6) 10월에 왕비의 두진(痘疹)으로 본청을 설하고, 김석주 · 신정(申晸)으로 하여금 경덕궁(慶德宮)에 숙직하게 하였고, 역시 숙종 때에 왕세자의 병환과 왕비의 병환으로 여러 번 본청을 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의약청이 상설관청이 아니고 임시관청의 성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무의 한계와 직제의 내용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왕 · 왕비 · 왕세자의 병환이 위중하였을 때 임시로 시약청과 의약청을 설치하여, 시탕(侍湯)과 치료제의 적부를 상의하는 책임을 맡게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