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의학서이다. 총 25권 2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596년 선조의 명으로 허준 등 5인이 공동으로 편찬을 진행하다가 병란으로 중단된 것을 허준이 단독으로 추진하여 1610년에 완성하였다. 병의 치료보다 예방을 강조하고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여 백과사전에 맞먹을 정도로 뛰어나게 편집한 책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의서이다. 중국에서 30여 차례 출간되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될 정도로 국제적인 의서가 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5권 25책.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여 1613년 내의원에서 개주 갑인자(改鑄甲寅字) 목활자로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이 책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태의(太醫)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儒醫)인 정작(鄭碏)과 태의 이명원(李命源) · 양예수(楊禮壽) · 김응탁(金應鐸) · 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찬집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하였으며, 내장(內藏) 방서(方書)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하였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印出),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1596년 왕명으로 시작되어 14년 후인 1610년에 완수되었다. 처음에는 허준을 비롯한 5인이 공동으로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나, 사업 초반 사정이 생겨 허준이 단독으로 집필하여 책을 완성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는 이듬해인 1593년 서울에 돌아와 전쟁 피해의 회복에 힘을 썼다. 조선은 전쟁의 참화로 피폐해졌으며, 민간에서 이용되던 대다수의 의학 서적들도 없어지게 되어 책을 구하기 힘든 형편에 놓였다. 1596년(선조 29) 선조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수의(首醫) 허준에게 이런 상황을 일신(日新)할 새 의학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다.
허준은 왕명을 받아 당시의 뛰어난 의원을 망라해 의서(醫書) 편찬작업을 시작했다. 어의인 양예수(楊禮壽) · 이명원(李命源) · 김응탁(金應鐸) · 정예남(鄭禮男) 등 4인과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의(儒醫) 정작(鄭碏)이 그들이다. 양예수는 허준보다 선배 세대의 어의로 신의(神醫)로 평가받은 인물이고, 정작은 어의는 아니지만 민간에서 형 정렴(鄭磏)과 함께 도교적 양생술의 대가로서 의학에 밝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이명원은 침술에 밝았으며, 김응탁 · 정예남은 신예 어의였다.
이렇게 많은 의관(醫官)와 의원(醫員)들이 모여서 의서 편찬에 투입된 사례는 세종 때 10인이 참여한 『의방유취(醫方類聚)』 편찬밖에 없었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의 지대한 관심에 따라 대규모로 기획되었다. 초창기에 이 책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당연히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수히 많은 처방들의 요점만을 간추린다.”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책이 매우 많았는데, 이 책은 이렇게 말하고 저 책은 저렇게 말하는 등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 수 있도록 약초 이름에 조선 사람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 시골에는 약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나는 약을 써야하는데, 그게 어떤 약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시골사람이 부르는 약초 이름을 쓴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차례가 겨우 정해졌을 때, 1597년(정유년) 1월 일본군이 다시 쳐들어오는 정유재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서 참여한 인물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려 『동의보감』을 편찬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1601년 봄 선조는 허준을 불러 왕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금의 의서 500여 권을 내주면서 의학 책의 편찬을 맡겼다. 이 때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단독으로 편찬할 것과 함께 더욱 시급한 의학 책인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등 3종을 우선 지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세 책은 그 해에 지어서 바쳐졌으나, 『동의보감』 편찬에는 허준이 공무(公務)로 틈을 내지 못하여 1608년이 되도록 절반도 끝내지 못했다. 이해 선조가 승하하자 그 책임을 물어 허준은 의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허준은 의서 편찬에 전념했다. 1609년 말 허준은 귀양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와 이듬해인 1610년 8월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 바쳤다. 광해군은 허준이 선왕의 유업을 완수했다고 하여 그에게 좋은 말 1필을 상으로 내렸다. 전란 직후라 출판할 사정이 좋지 않아 인출본은 3년이 지난 후인 1613년에 내의원의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 목활자를 사용하여 출판되었다.
『동의보감』의 주요 서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우리나라 간본: 내의원 훈련도감활자 초간본(1611∼1613), 호남관찰영(觀察營) 전주장본(全州藏本), 영남관찰영 대구장본, 갑술 내의원 교정 영영(嶺營) 개간본(改刊本, 순조 14, 1814), 갑술 내의원 교정 완영(完營) 중간본(重刊本) 등이 있다.
1991년에 이 중 보존상태가 뛰어난 초간본 3종(국립도서관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품)을 보물로 지정하였고, 2008년에 각각 보물 번호를 변경하였다. 이후 동의보감 초간본 3종의 문헌사적, 서지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각기 국보로 승격 지정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1614년(광해군 6) 2월에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에 내사(內賜)한 것이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은 25권 25책 완질본으로 무주 적상산사고본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은 2종이 지정되었는데, 모두 1613년에 간행된 초간본이다. 「규귀(奎貴) 1933」본은 전체 25책 중 1책(권6)이 결본된 영본(零本)이고, 「규(奎) 3553」본은 17책만 남아 있다.
② 중국 간본: 『동의보감』(1763년 초간본), 『동의보감』(1796년 재간본, 江寧 敦化堂), 『동의보감』(1890년 복간본)과 민국상해석인본 · 대만영인본 등이 있다. 이들 인본 가운데 1890년의 광서복간본(光緖覆刊本)은 건륭판(乾隆版)이나 가경판(嘉慶版)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본 간본에 의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③ 일본 간본: 『동의보감』(梱井藤兵衛, 京都書林, 1724년 초간본), 『동의보감』(1799), 『원원통(源元通)』(大阪書林, 1799년 훈점(訓點) 재간본)이 있다. 이 간본들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의가(醫家)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방서(方書)로서 널리 전포(傳布)되었다.
『동의보감』은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내경편(內景篇)」(6권) · 「외형편(外形篇)」(4권) · 「잡병편(雜病篇)」(11권) · 「탕액편(湯液篇)」(3권) · 「침구편(鍼灸篇)」(1권)이다.
우선 이 책은 신체에 관한 내용을 안팎으로 나누어 신체 내부와 관련된 내용을 「내경편」에, 신체 외부와 관련된 내용을 「외형편」에 두었다. 신체 관련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병 이론과 구체적인 병 내용은 「잡병편」에 묶였다. 「탕액편」은 가장 주요한 치료수단인 약에 관한 이론과 구체적인 약물에 관한 각종 지식을 실었고, 「침구편」은 또 하나의 치료수단인 침 · 뜸의 이론과 실제를 다뤘다.
각 편의 구체적인 목차는 다음과 같다. 「내경편」에는 신형(身形) · 정(精) · 기(氣) · 신(神) · 혈(血) · 몽(夢) · 성음(聲音) · 언어(言語) · 진액(津液) · 담음(痰飮) · 오장육부(五臟六腑) · 포(胞) · 충(蟲) · 대소변(大小便) 등 내과에 딸린 질병과 함께 수양 · 양로병들과 목록이 부기되어 있다.
「외형편」에는 두(頭) · 면(面) · 이(耳) · 비(鼻) · 구설(口舌) · 치아(齒牙) · 인후(咽喉) · 두항(頭項) · 배(背)에서 흉(胸) · 복(腹) · 요(腰) · 협(脇) 및 사지(四肢) · 피(皮) · 육(肉) · 골근(骨筋) · 모발(毛髮) · 전후음(前後陰) 등에 이르는 외과적 질병이 기록되어 있다.
「잡병편」에는 천지운기(天地運氣) · 심병(審病) · 변증(辨證) · 진맥(診脈) · 용약(用藥) 등 진단법으로부터 풍(風) · 한(寒) · 서(暑) · 조(燥) · 화(火) · 내상(內傷) · 허로(虛勞) · 곽란(霍亂) · 구토(嘔吐) · 해수(咳嗽) · 적취(積聚) · 부종(浮腫) · 창만(脹滿) · 소갈(消渴) · 황달(黃疸) · 온역(瘟疫) · 괴질(怪疾) 등 내과질환과 옹저(癰疽) · 제창(諸瘡) · 제상(諸傷) 등 외과질환들이 혼잡(混雜)되어 있고, 그 밖에 부인과(婦人科) · 소아과(小兒科)가 따로 첨부되어 있어 각 병상들을 그 증후에 따라 배열하였다.
「탕액편」에는 탕액서례(湯液序例)로서 채약법(採藥法) · 건약법(乾藥法) · 삼품약성(三品藥性) · 수제법(修製法) · 제약법 · 탕산환법(湯散丸法) · 자약법(煮藥法) · 복약법 · 오미약성(五味藥性) · 기미승강(氣味升降) 등의 사례를 기록하였다. 그 다음에는 전 약물을 수부(水部) 35종, 토부(土部) 18종, 곡부(穀部) 107종 등 140여 부로 나누어, 그 약명(藥名) 아래에 대개는 우리의 속명을 붙이고 그 다음에 약성(藥性) · 약미(藥味) · 약독(藥毒)의 유무 및 약효(藥效)와 채취 시기 등에 관한 본초학적 지식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침구편」에는 구침제법(九鍼制法)에서 연침법(鍊鍼法) · 화침법(火鍼法) · 점혈법(點穴法) · 제애법(製艾法) · 구법(灸法) · 침보사법(鍼補瀉法) 등과 같이 서설적 논제(論題) 등을 들고, 그 다음에 십이경맥(十二經脈)의 유(流) · 주(注) · 수혈(兪穴) 들의 소재 부위를 자세히 적었다.
『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병났을 때의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중국에서 별개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의학과 양생의 전통을 하나로 합쳐냈다. 병의 치료와 예방, 건강도모를 같은 수준에서 헤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 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중국의 한나라에서 명나라에 이르는 200여 종의 문헌과 『의방유취』 ·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의림촬요(醫林撮要)』와 같은 수 종(種)의 조선의서를 참고한 내용을 자신의 학식과 경륜에 결합하여 『동의보감』 안에 녹여내었고, 의학의 경전인 『영추(靈樞)』와 『소문(素問)』의 정신에 따라 의학의 줄기와 가지를 잡고, 다양한 학설과 처방을 병의 증상 · 진단 · 예후 · 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오늘날 백과사전의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참고한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힘으로써 원(原) 저작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인용 대목이 갈리는 곳은 ‘O’를 쳐서 구별하고, 제목과 본문 내용을 큰 활자와 작은 활자를 써서 쉽게 구별하도록 하였다. 이런 특징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아 출간 직후부터 『동의보감』은 조선을 대표하는 의서로 자리잡았으며, 18세기 이후 『동의보감』은 국제적인 책이 되었다.
『동의보감』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나, 중국 의서 가운데 『동의보감』과 성격이 비슷한 종합의서로서 『동의보감』보다 많이 찍은 책은 불과 수 종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은 국내 및 국제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2009년 7월 제9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바베이도스)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