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산지와 언덕이 우세한 지역이다. 천마산(天馬山) 줄기가 지나는 동부와 남부 지역의 고도가 높고, 서부와 북부 지역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져 압록강 연안은 저산성 구릉지와 평야를 이룬다. 동부와 남부에는 금강산(金剛山: 525m), 연대산(煙臺山: 413m), 미륵산(彌勒山: 355m), 행금산(橫琴山: 407m), 백마산(白馬山: 410m) 등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으며, 북쪽에는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이 흐른다.
천마산에서 발원한 삼교천이 서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하며, 백운산에서 발원한 당목천은 북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한다. 그리고 동쪽과 남쪽 산지에서 발원한 옥내천, 수진천, 금광천 등은 북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한다.
압록강 하류에는 하천의 퇴적작용으로 어적도(於赤島), 구리도(九里島), 막사도(漠沙島), 수구도(水口島) 등 하중도가 형성되어 있다. 의주군에는 금광, 연무, 운천, 홍남, 용계, 미송 일대 관개용수 공급을 담당하는 금강저수지가 있다. 삼림은 의주군 전체의 56%를 차지하며, 주요 수종으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다. 토양은 대부분 지역에 갈색산림토가 분포하나, 강하천 연안에는 충적토 등이 분포해 있다.
기후는 우리나라 북단에 위치하고 대륙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가 나타난다. 하지만 서부 해안 지대로부터 내륙 산간지대로 넘어가는 점이지대여서 주변 지역에 비하면 비교적 따뜻한 편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은 8.4℃, 1월 평균기온은 -9.6℃, 8월 평균기온은 23.9℃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083㎜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미송리에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미송리형 토기를 비롯한 유물 · 주거지가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정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였다가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발해에 편입되었다. 발해 시기에는 서경압록부(西京鴨錄府)에 속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발해 멸망 후에는 거란의 근거지가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는 북진정책을 고수함에 따라 거란을 비롯한 북방 세력과의 충돌이 일어났다.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때 서희의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지배를 인정받으면서 고려 영토로 수복하였다. 이때 군의 동쪽에 강동6주(江東六州)의 하나인 흥화진(興化鎭)이 설치되었으며, 용만현(龍灣縣) 또는 화의(和義)라고 불렀다. 거란의 4차에 걸친 침입이 실패로 끝난 뒤 방비를 굳건히 하기 위해 1032년(덕종 1) 오늘날 신의주 부근에 성을 쌓았고, 1033년에 압록강 입구를 기점으로 이 지역을 거쳐 동해안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1117년(예종 12) 금나라가 거란을 정벌하자, 고려는 내원성과 포주까지 수복하며 이 지역을 완전히 영토로 편입하였다. 수복 과정에서 이 지역의 수장이 고려에 투항하였는데, 이에 고려 예종이 의로운 고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의주로 부르게 했다고 주1 이후 고려에서는 이곳에 의주방어사(義州防禦使)를 두었고, 압록강을 경계로 관방(關防)을 두었다.
1221년(고종 8)에는 한순과 다지가 일으킨 의주적(義州賊)의 난이 일어나면서 함신(咸新)으로 격하되었다가 회복되었다. 1269년(원종 10)에는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영기관(營記官) 최탄(崔坦) 등이 원나라에 항복하면서 원나라 동녕부에 속하였으며, 1290년(충렬왕 16)에 고려 영토로 복구되었다.
1366년(공민왕 15)에는 의주목(義州牧)으로 승격되었고, 1369년 만호부(萬戶府)를 두어 좌정(左精) · 우정(右精) · 충신(忠信) · 의용(義勇)의 4군(軍)을 설치하였다. 1388년(우왕 14)에는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러 가던 중 이곳에 있는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였다.
1402년(태종 2)에 판관(判官)을 두고 정주(靜州)와 위원진(威遠鎭)을 합하였다. 1432년(세종 14) 4월에는 토착민에게 주던 관직인 토관(土官)을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의주목의 호구는 531호, 인구는 1,498인이었으며, 군정(軍丁)은 익군(翼軍) 336인, 수성군(守城軍) 21인이었다. 세조 때는 진(鎭)을 두어 북방 수비의 요충지로 삼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목사 관사에 체류하였는데, 이로 인해 환도 후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승격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가장 먼저 함락된 곳이었으며, 병자호란 때는 당시 의주부윤이었던 임경업의 활약으로 백마산성(白馬山城)을 지킬 수 있었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는 청천강 이북의 서북8읍이 모두 점령되었으나, 의주군은 구성 · 영변과 함께 점령을 면하였다.
1895년 지방 관제가 부군제로 바뀜에 따라 의주부가 되었고, 1896년 지방제도 개편 때 평안북도 의주군이 되었다. 1907년에는 평안북도 도 관찰부가 영변에서 의주로 옮겨왔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광성면 일부를 신의주부로 분리하였고, 1921년에는 도청이 신의주로 이전하였다. 1931년에는 의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고진면과 광성면은 신의주부로 이관되었다. 1943년 기준 의주군의 호구는 2만 6,180호, 인구는 15만 5,413명이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고령삭면은 천마군에, 피현면 · 월화면 · 위원면의 전체 리와 고관면의 11개 리는 피현군에, 가산면 · 옥상면 · 광평면은 창성군에 편입하고, 의주면 · 고성면 · 송장면 · 수진면 · 위화면의 전체 리와 고관면의 5개 리, 신의주시 2개 리를 병합하여 군을 재구성하였다. 이때 의주면의 동부리와 향교리 등을 합쳐 의주읍으로 개편하면서 1읍 20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61년에는 상단리 · 하단리가 신의주시로 편입되었으며, 1963년에는 덕룡리가 덕현노동자구(德峴勞動者區)로 승격하였다. 1972년에는 연하리가 연하노동자구(煙下勞動者區)로 승격되었고, 용운리 일부 지역을 분리해 어적리를 신설하였다. 1989년에는 덕현노동자구 일부 지역을 분리해 덕룡노동자구(德龍勞動者區)를 신설하고, 연하노동자구는 연하동으로 강등되어 신의주시 광명구역으로 이관되었다. 2008년 기준 의주군의 행정구역은 1읍, 2구, 17리로 구성되어 있다.
의주군에는 신석기 ·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미송리 유적을 비롯하여, 북방 방위를 목적으로 건설된 천리장성과 백마산성, 의주 읍치의 중심이었던 의주읍성, 조선시대 정자인 통군정, 사찰 금광사 등이 있다.
미송리 유적은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 동남부에 있는 동굴 유적이다. 석회석을 채취하다가 발견되었으며, 1959년 3월 발굴 조사 결과 두 개의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아래에서는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위에서는 민무늬토기를 비롯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를 일컬어 미송리형 토기라고 부른다.
의주군은 북방 방위의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천리장성과 백마장성, 의주읍성 등이 건설되었다. 천리장성은 고려장성(高麗長城)이라고도 부르며, 거란과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흥화진 · 영원 · 운주 · 맹주 · 화주 등 지방 중심지를 서로 연결하여 축조하였다.
백마산성은 고려 전기 이후에 축성된 내성과 조선 후기에 축성된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성은 고려 현종 때 강감찬이 축성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632년(인조 10) 임경업이 내성을 고쳐 쌓았다. 1753년(영조 29)에는 외성을 축성하였다. 이 밖에도 고미산성(姑未山城), 서고성, 연주성(延州城), 건천성, 고연평성(古延平城) 등의 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주읍성은 둘레 약 8.3㎞의 성으로, 의주 일대를 둘러싼 성이다.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북방 방위의 중요성에 따라 오래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520년(중종 15) 확장 · 개축하였으며, 이때 개축된 성의 둘레는 27,531자였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에 창건된 금광사(金光寺)와 1823년(순조 23)에 중수한 통군정(統軍亭), 의주남문, 임경업장군비 등이 유명하다. 특히 통군정의 경우 조선시대 누정 건물 중 구조와 형식이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항기 이전의 교육은 주로 유학 교육에 치중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신교육이 보급되면서 유학 교육의 비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의주의 신교육을 담당한 학교는 주로 사학 기관이었는데, 1927년 통계에 의하면 군내에는 사립학교 15개교에 1,173명의 학생이 있었다. 이 밖에 야간학교와 유치원 3개소도 있었다.
의주군의 대표적인 사립학교로는 1908년 유지들이 세운 양실학원을 발전시켜 기독교 후원으로 확장하게 된 양실사립보통학교가 있다. 양실학교는 의주 3·1만세시위를 계기로 폐쇄되었으나, 학교의 재건을 위해 평안도 전역을 돌며 기부금을 모금하였고, 그 결과 1926년 재단법인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양실학교는 1932년 의주 지역 내 사립학교 최초로 보통학교로 승격하였다.
공립학교로는 1929년경까지 의주공립보통학교를 비롯하여 7개교가 있었다. 중등교육 기관으로는 1910년 건립되어 1928년 5년제 농업학교가 된 의주농업학교가 있었다. 2003년 기준 의주군에는 덕현공업대학, 의주공업대학, 의주농업전문학교 등을 비롯하여 20여 개의 학교와 유치원, 탁아소가 있다.
개화기 이전에는 주로 불교 사찰이 많았으나, 일찍부터 천주교가 대륙으로부터 수용되는 통로였기 때문에 의주읍동외동교회 등이 위치해 있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 개신교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응찬(李應贊)이 전교 활동을 하였고, 1894년에 최초의 순교자 백홍준(白鴻俊)이 나오기도 하였다. 1886년 최초로 의주에 교회가 창설된 이래 1918년에는 26개소의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시설로는 의주공원이 있다. 의주공원은 의주 서쪽을 흐르는 압록강 기슭의 낮은 언덕인 삼각산 일대에 관서팔경의 하나인 통군정을 중심으로 조성되었으며, 주변의 풍치를 관람하고자 많은 사람이 찾는다. 2003년 기준 의주군의 문화 기관으로는 의주군문화회관, 의주군도서관, 의주책방, 의주체육관 등이 있다.
이 지역의 설화로는 선조가 의주로 파천해 왔을 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통군정 설화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파천한 선조가 애타게 기다리던 명나라 원군이 왔는데, 명나라 장수가 왕을 보고 보잘것없다 여겨 군병을 몰고 돌아가려 하였다. 이에 선조가 슬퍼 눈물을 흘렸는데, 한 신하가 선조에게 통군정에 올라가서 큰 독을 쓰고 울라고 하였다. 신하의 말대로 통군정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더니 그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명나라 장수가 왕은 보잘것없으나 왕다운 위엄이 있다 여겨 군사를 다시 인솔해 조선군을 도왔다고 한다. 왕이 통곡을 했다고 하여 통군정을 통곡정이라고도 불렀다.
이 지역의 민요로는 「신랑요」, 「개똥벌레요」, 「풀무요」 등이 전한다. 「신랑요」는 조혼 풍습과 관련 있는데, 나이 어린 신랑이 자기 아내에게 밥을 풀 때 누룽지를 달라고 조르자, 어린 신랑이 채신머리없이 군다고 놀리는 노래이다. 「개똥벌레요」는 남자아이들이 밤에 개똥벌레를 잡으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풀무요」는 일명 아이 어르는 노래라고도 하며, 아이가 울 때 달래기 위해 부르던 노래이다.
의주군의 경제 구조는 농업과 제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경지는 의주군 전체 면적의 32%를 차지하며, 그중 논이 20%, 밭이 72%를 차지한다. 주요 재배 작물로는 옥수수와 벼가 있으며, 밭작물로는 콩 · 옥수수 · 조 · 감자 등의 생산량이 많은 편이다. 의주읍, 덕현, 수진 등 전문 채소 기지에서는 배추, 무, 시금치, 가지, 오이, 호박 등의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과수 작물로는 배가 생산되며, 이 외에 삼과 들깨, 땅콩을 재배하고 있다. 축산으로는 주로 토끼, 염소, 돼지, 닭, 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으며, 덕현닭공장을 비롯한 전문 축산 기지에서 생산된다.
제조업은 광물 채굴과 금속 생산, 식료 공장과 일용품 공장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철광석을 생산하는 덕현광산이 있으며, 제철제강공업의 원료로 사용되는 자철정광과 유색금속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석고와 사문석을 비롯한 비금속광물도 생산하고 있다. 의주곡산공장, 의주식료공장, 의주일용품공장에서는 식료품, 학용품, 의약품, 철제 및 목제 일용품을 생산한다.
압록강 연안을 따라 평의선 지선인 덕현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의주역과 수진역, 정광역, 덕현역이 설치되어 있다. 주요 도로로는 신의주우암, 의주구장, 대문추리, 연하피현, 의주덕현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이 외에도 압록강변에 위치한 주요 포구인 서호, 의주, 수진, 대화를 통해 신의주옥강 간 수상 통로가 개설되어 있다.
의주군의 서쪽에 위치한 읍이다. 압록강 하류 연안에 있어 연안 충적평야 지대에 해당하고, 대륙성기후가 나타나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더운 날씨가 지속된다. 조선시대에는 의주의 읍치가 있던 곳으로, 의주읍성을 비롯한 역사 유적이 많이 분포해 있다. 1923년 도청 소재지가 신의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의주군뿐만 아니라 평안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현재는 신의주가 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신의주시의 위성도시 역할을 한다. 평의선 지선인 덕현선 철도의 의주역이 있다. 교통은 수풍댐 건설로 인해 압록강 수로가 절단되기 이전까지는 수로가 가장 편리하였으나, 현재는 도로를 이용한 이동이 주를 이룬다.
덕룡노동자구는 군의 동쪽에 위치한 노동자구이다. 1989년 1월 덕현노동자구에 속했던 지역을 분리해 신설한 노동자구로, 서쪽 용계리와의 경계에 거무산[247m]이 있으며, 수진천이 중앙을 흐른다. 덕현선 정광역이 위치해 있으며, 의주~덕현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덕현노동자구는 군의 동쪽에 위치한 노동자구이다. 동쪽은 삼하리, 서쪽은 대화리, 남쪽은 덕현노동자구, 북쪽은 추리와 접해 있다. 광복 후 철광석이 채굴되면서 철광 생산과 철광 자원 개발을 위한 여러 시설이 건설되며 인구가 증가한 광산 도시이다. 이곳에 있는 덕현광산에서는 철과 구리를 생산하며, 생산된 철광석은 인근의 덕현 9.13제철소로 수송되거나 중국으로 수출된다. 덕현선 덕현역이 위치해 있으며, 의주덕현 간, 대문추리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금광리는 원래 의주부 송장면 지역으로, 금광사라는 절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금광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지역은 해발 500m 안팎의 산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하천으로는 압록강으로 유입되는 금광천 등이 흐르고 있다. 전체 면적의 40%가 농경지로, 군내 주요 벼 재배지이다. 의주~구장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대문리는 원래 의주부 송장면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쌓은 성에 큰 대문을 세웠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대문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지역의 대부분은 낮은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면적의 19.6%가 농경지이다. 대부분이 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옥수수를 재배한다. 의주구장 간 도로와 대문추리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대산리는 군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백마산성 북장대가 있는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전체적으로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은 압록강의 지류인 행군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전체 면적의 40%가 농경지이나, 대부분 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로 옥수수와 채소류를 재배한다. 연하~피현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대화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수진면의 대수리 · 이화리 · 수구리를 병합해 신설한 리이다. 대수리의 ‘대’ 자와 이화리의 ‘화’ 자를 합쳐 대화리라고 이름 붙였다. 북서부로는 압록강이 흐르고, 리 중심에는 수진천이 관류한다. 특산물로는 삼과 땅콩이 유명하며, 누에치기와 축산업이 성행하는 지역이다.
미송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수진면의 미사리와 송천리를 병합해 신설한 리이다. 미산리의 ‘미’ 자와 송천리의 ‘송’ 자를 합쳐 미송리라고 이름 붙였다. 북동부 거무산[274m] 일대에는 화강암이, 남동부에는 석회암이 분포해 있어 이를 이용해 석회석과 소석회를 생산하고 있다. 북부로는 덕현선이 지나가고, 도로로는 의주~덕현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삼하리는 원래 의주군 옥상방 지역으로, 삼봉산 아래에 놓여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삼하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군에서도 산지가 많은 지역이며, 하천으로는 당목천의 지류인 옥내천이 흐르고 있다. 전체 면적의 9%가 농경지이며, 주로 옥수수와 담배를 재배한다. 대문~추리 간 도로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으며, 삭주군 내옥리, 천마군 영산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서호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의주면의 서호리 · 다지리 · 철천리를 병합해 신설한 리이다. 의주읍의 서쪽에 위치한 호수를 낀 마을이라 하여 서호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압록강에 둘러싸여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주로 옥수수, 벼를 비롯한 곡물과 채소류를 재배하고 있다. 덕현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수진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수진면의 운천리 · 중도리 · 북상리를 병합해 신설한 리이다. 수진면 소재지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수진리라 이름 붙여졌다. 남동부에는 거무산[274m]이 솟아 있으며, 하천은 서부 경계에 압록강이 흐르고, 북부에는 압록강 지류인 수진천이 흐른다. 농경지는 전체 면적의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작물은 옥수수이다. 이 외에 배, 복숭아, 삼을 재배하고 있다. 덕현선 수진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어적리는 본래 의주부 주내면이었던 지역으로, 어적도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어적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압록강의 물길 변화와 퇴적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농경지는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한다. 주로 옥수수, 벼를 비롯한 곡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압록강에 있는 포구를 통해 군내 여러 지역과 연결된다.
연무리는 본래 의주군 송장방 지역으로, 군사 훈련장으로 이용하던 '연무정각'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연무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남동부 대부분 지역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천은 북서부로 오목천이 흐른다. 주요 재배 작물로는 옥수수, 벼를 비롯한 채소류와 담배가 있으며, 염소, 돼지, 토끼, 닭 등을 사육하고 있다. 북부로 의주~구장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용계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수진면 용문리와 석계리를 병합한 곳으로, 용문리의 ‘용’ 자와 석계리의 ‘계’ 자를 따서 용계리라고 이름 붙였다. 서부에는 거무산[274m]이 솟아 있고, 나머지 지역은 압록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충적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재배 작물로는 옥수수, 벼를 비롯한 곡물과 채소류, 박하와 사과, 배, 복숭아 등이 있으며, 양잠업도 발달하였다. 신의주우암 간 도로와 의주덕현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용운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수진면 용운리와 의주면 어적리를 병합하여 신설한 리이다. 용운이라는 이름은 구름이 자주 끼는 압록강 연안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혹은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압록강의 물길 변화와 퇴적으로 형성된 구리도, 관마도, 소관마도, 하관마도 등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재배 작물로는 땅콩이 있으며, 이 외에 양잠업과 축산이 성행한다.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압록강변에 있는 포구를 이용한 수로가 개설되어 있다.
운천리는 원래 의주부 송장면 지역이다. 압록강의 지류인 한천(漢川)을 끼고 있는 큰 마을이라 하여 한천리로 불렸으나,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운천리라 이름 붙여졌다. 한천, 오목천, 피상천, 성외천 등 작은 하천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주요 재배 작물로는 벼, 옥수수, 콩, 채소류, 담배 등이 있다. 남부로 의주~구장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중단리는 원래 의주부 소곶면 지역으로, 면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에서 중단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지역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농경지 대부분에서 밭작물이 재배되는데, 옥수수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의주~구장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추리는 원래 의주부 가산면 지역으로, 가래나무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추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지역의 대부분은 해발고도 400m 안팎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심부에는 당목천 지류인 옥내천이 관류하고 있다. 주요 재배 작물은 옥수수, 벼, 담배이다. 동부에 있는 거추리산에는 사문석, 활석이 묻혀 있는데, 사문석은 비료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 신의주우암 간 도로와 대문추리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춘산리는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의주군 고관면의 노리와 춘곡리를 병합해 신설한 리이다. 춘산리라는 이름은 춘곡리의 ‘춘’ 자를 따고, 지역에 주산과 향산이 있어 '산'을 붙여 만들어졌다. 지역에는 산지가 많이 분포하며, 하천으로는 삼교천, 행산천, 중단천, 춘곡천 등이 통과한다. 주요 재배 작물로는 옥수수, 벼, 콩을 비롯한 곡물과 감자, 고추 등이 있다. 의주~구장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홍남리는 원래 의주부 주내면 지역이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의주면의 홍북리 · 남산리 · 홍남리를 병합한 곳으로, 홍예문의 남쪽에 위치한 곳이라는 뜻에서 홍남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압록강 지류인 오목천이 흐르고 있으며, 하천 주변에 농경지가 분포해 있어 주로 벼를 재배한다. 신의주~우암 간 도로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