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지(江陵府誌)』는 1899년(광무 3)에 강릉부사로 재임하였던 정헌시(鄭憲時)가 편찬하였다.
1책 93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27.3㎝, 가로 19.4㎝이다. 표제는 ‘강원도강원부지(江原道江陵府誌)’이고, 권수제는 ‘강릉부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1997년에 발행된 『규장각자료총서: 지리지편』 중 『강원도읍지』 2권에 영인 수록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에서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이 밖에 강릉 지역에 대한 관찬 읍지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주2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 주3 등이 있다. 또한 일본 동양문고 소장의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관동읍지』, 일본 국회도서관의 『강원도읍지』 등의 도지에도 강릉 지역의 관찬 읍지가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으로 상호 보충된다.
이 읍지는 1899년 읍지상송령에 의해 편찬된 읍지를 일제강점기에 베껴 쓴 후사본이다. 일제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지방 정보를 얻기 위하여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필사하게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베껴 쓴 것이다. 정조(正祖)를 ‘당저’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정조 대의 관찬 읍지 내용을 바탕으로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환 항목에 1897년(고종 34) 정헌시의 부임까지 기록해 놓아, 1899년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첫머리에 각 면(面)과 산천, 도로망 등을 자세하게 표현한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그다음에 목록을 실었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건관인혁(建官因革), 군명(郡名), 관부공해(官府公廨), 방리(坊里), 방리호구(坊里戶口), 교원(校院), 단황(壇隍), 능침(陵寢), 산천, 관액(關阨), 도서(島嶼), 봉수(烽燧), 도로, 역로(驛路), 교량(橋梁), 목장(牧場), 인물, 부성씨(附姓氏), 부풍속(附風俗), 물산(物産), 진공약재(進貢藥材), 진공해착(進貢海錯), 명환(名宦), 창고(倉庫), 조적(糶糴), 사환(社還), 전세(田稅), 대동(大同), 삼세(蔘稅), 균세(均稅), 선세(船稅), 염세(鹽稅), 곽세(藿稅), 은점(銀店), 봉록(俸祿), 제언(堤堰), 병총(兵摠), 군기(軍器), 형승(形勝: 누정제영부(樓亭題詠附)), 사찰, 고적(古蹟), 과환(科宦), 효자, 절부(節婦), 충노(忠奴), 인물 등으로 구성하였다.
강릉의 읍지는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포함하여 관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편찬되었다. 1788년(정조 12)의 『강릉부지』를 저본으로 하여 1871년(고종 8)에 『관동읍지』에 수록된 강릉 읍지가 편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899년에 다시 『강릉부지』를 편찬하였다. 본 읍지는 1899년의 읍지를 일제강점기에 베껴 쓴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 『강릉군지』와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