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시 ()

인문지리
지명
평안북도 북서쪽 압록강 하구 남안에 있는 시.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180㎢
인구
359,341명(2008년)
행정구역
49동 9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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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의주시는 평안북도 북서쪽 압록강 하구 남안에 있는 시이다. 평안북도 도청 소재지이며, 동쪽은 의주군, 동남쪽은 피현군, 서남쪽은 용천군과 접한다. 그리고 북쪽 및 서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단둥과 마주하고 있다. 총면적은 180㎢이며, 인구는 2008년 현재 약 35만 9,341명이고, 49동 9리를 관할하고 있다.

정의
평안북도 북서쪽 압록강 하구 남안에 있는 시.
개관

동쪽은 의주군, 동남쪽은 피현군, 서남쪽은 용천군과 접하며, 북쪽 및 서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단둥[丹東]과 접경을 이루는 국경의 관문 도시이다. 총면적은 180㎢이고, 인구는 2008년 현재 약 35만 9,341명이다.

자연환경

시의 남쪽 경계에 삼교천이 서쪽으로, 북쪽에는 압록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어, 하구에 복합 삼각주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 하중도 · 범람원 등이 발달하였다. 축면산(縮緬山) 구릉 밑에 형성된 범람원 위의 사주에 세워진 도시로, 압록강 홍수 때마다 흙탕물이 범람하여 농사조차 불가능한 강기슭이었다. 북부와 서쪽에는 10여 개의 섬들이 있고, 시의 중심부는 해발고도가 매우 낮다. 동쪽과 서쪽에는 낮은 구릉이 분포하고 있다.

역사

1402년(태종 2) 판관을 두었으며, 세조 때 이르러 진을 설치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이곳으로 피난한 것을 계기로 환도 후인 1593년 부윤으로 승격하였다. 1634년(인조 12)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를 겸하였다가 병자호란 후 혁파되었다. 그 뒤 1641년 양서운향사(兩西運餉使)를 겸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군용 철도 부설을 위해 임시철도감부(臨時鐵道監府)를 설치, 경의선 부설을 착수하였다. 1905년 청천강 · 대령강의 철교를 제외한 용산∼의주 간 철도를 완성함에 따라, 종착역으로 정한 이곳을 '신의주'라 칭하고 많은 일본인을 이주시켰다.

1914년 의주부를 신의주로 옮겨 신의주부라 하고 19동으로 확장 · 재편하였으며, 이곳을 도청 소재지로 지정하였다. 이곳이 국제도시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함에 따라 1921년 11월 도청을 이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압록강 홍수 때마다 반복되던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해 1923년부터 6년간 시가지 정리 및 제방 공사를 시행하였다.

1929년 행정구역을 확장함에 따라 1930년에는 인구 4만 5,000여 명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1943년 5월에 이르기까지 호수 2만 4,763호, 인구 12만 7,535명으로 증가하였다. 신의주부는 광복 후인 1947년 신의주시로 개칭되었다.

1952년 유하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평안북도 우시군 우시읍에 편입하였고, 1961년 본부동 · 백운동 · 도서동 일부를 분리하여 신원동에 편입하였다. 1963년 탑리를 송한리에, 신풍동을 마전리에 각각 편입하고, 마전리를 마전동으로 개칭하였다. 또 광성읍을 폐지하고 그 지역에 유상동 · 와이동을 신설하였으며, 백토리 일부를 분리해 와이동에 편입하였다. 그리고 낙원노동자구를 낙원동으로 개칭하였다.

1989년에 구역제를 실시하여 광명구역, 강안구역, 남구역을 설치하였다가, 1991년에 다시 폐지하였다. 그리고 2002년 염주군철산군의 일부를 편입하여 신의주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을 추진하였으나, 이후 중단되었다. 2008년 현재 행정구역은 49동 9리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 · 교통 · 관광

주요 공업지구로 개발되었으며, 기계 · 화학 · 방직공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계공업에서는 각종 기계, 화학공업에서는 화학섬유와 종이 생산이 대표적이다. 신발과 화장품 생산도 북한 전체에서 비중을 차지하며, 특산물로는 각종 주1가 있다. 신의주공업지구는 수풍발전소와 천마발전소를 끼고 있는 등 양호한 공업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북한 유일의 디젤엔진 공장인 북중기계공장을 비롯, 화학섬유 · 조선 · 중기계 · 수산물 가공 · 제지 및 방직공업이 발달해 있다. 신의주모방직공장은 종업원 3,500명이고, 연간 생산 능력은 방모사 1만 8,000t[스테이플 파이버 70%, 양모 30%], 방모직물 450만m, 염색가공 5,370m이다.

1988년 6월 김정일이 신의주 시찰 도중 내린 지시에 따라 남신의주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신의주는 공업도시인 함흥나진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인 데다가 중국의 단둥과 압록강대교를 통한 왕래가 빈번함에 따라 평북도당 주관으로 각지의 인력을 차출해 개발 현장에 투입하였다. 이 지역에는 3만 세대의 주택과 학교 · 유치원 · 극장 · 호텔 · 학생소년궁전 · 광장 · 체육 시설이 건립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압록강과 연결되는 운하와 철도, 지하망 공사 등도 건설해 수송력을 증대하기로 하였다. 신의주 강 · 하천건설사업소의 기술자들이 무동력 삭도[케이블카]를 개발해 전국에 보급함에 따라 각지의 건설사업소에서 많이 활용하게 되었다.

신의주시는 1988년 4월 1일부터 중국인들의 방북이 허용되면서 보다 활기를 띠게 되었으나, 단둥시에서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시까지 한정된 구간에 허용되었다. 1989년 12월부터는 중국 측에서 북한 내 관광 여행 상품 개발을 계기로 평안북도에 한해 3일간 여행이 가능하도록 연장하였다. 1988년경부터 관광지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압록강에 여러 척의 관광선을 취항시키고 있다.

1988년 4월 유엔개발계획의 자금과 기술자원으로 평양∼신의주 간 95㎞ 자동신호 정지 장치 등 철도 사령(司令) 자동화 공사를 완공하였다. 이 공사로 1.2배 정도의 수송력 향상 효과를 가져왔다. 신의주는 평의선의 종점이며, 여기서 중국으로 통하는 철도가 이어진다. 평의선의 남신의주역에서는 덕현선[남신의주-의주-덕현]과 백마선[남신의주-피현-염주]이 갈라진다. 도로는 신의주∼평양, 신의주∼의주, 신의주∼피현 간을 잇는다. 신의주항을 통해 압록강 하류의 섬들과 용암포-비단섬-철산-정주-남포-해주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화물 수송이, 압록강 상류로는 의주-옥강-청성까지의 구간에서 화물과 여객 수송이 이루어진다. 신의주-유초리-황금평리-비단섬 사이에 여객선이 다닌다.

교육 · 문화

교육기관으로는 차광수대학 · 관서대학 · 광제대학 · 만풍대학 등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북한 동향과 분석』(북한학연구소, 동국대학교, 2022)
『한국지명유래집: 북한편 1』(국토지리정보원, 2013)
『북한 국보유적 연혁 자료집』(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법랑을 올려서 만든 양철 그릇.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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