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성 ()

목차
관련 정보
피현 백마산성 성벽
피현 백마산성 성벽
건축
유적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내용

현재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고구려때에 쌓은 우마성벽도 일부 남아 있다.

우마성의 성벽은 백마산의 가장 높은 곳에 고구려 축성방법으로 쌓았는데 성벽 밑부분에는 계란모양의 굽도리를 조성하고 방추형 성돌의 이음새를 잘 맞추어 쌓았다.

내성은 고려 현종 때 강감찬(姜邯贊)이 쌓은 것으로, 1646년(인조 24) 부윤 임경업(林慶業)이 다시 쌓았는데 서남쪽으로 지형이 매우 험하다. 내성의 둘레는 2,590m이다.

당시의 둘레는 2,600 보(步), 높이 2장(丈)으로 옹성(甕城) 7개, 치각(雉閣) 7개, 문 5개, 군포(軍舖) 30, 정(井) 32, 지(池)가 13군데 있었다.

또한 성내에는 동창(東倉)과 읍창(邑倉)이 있고, 양무고(養武庫)와 결승정(決勝亭)이 있었다.

외성(外城)은 1753년(영조 29) 부윤 남태기(南泰耆)가 처음으로 돌로 쌓았는데 동서북 3면이 낮고 평평하다.

둘레 2,103보, 높이 2장, 치각 4개, 문 3개, 장대(將臺) 1, 군포 10, 우물 3군데가 있고, 기패관(旗牌官) 180인, 보성생(補城生) 440인을 두었다. 이 산성은 특히 1636년의 병자호란 때에 임경업이 이곳을 근거로 하여 싸운 곳으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대동지지(大東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