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두만강유역까지 영토를 개척할 당시에 쌓은 것을 그 뒤 새로 축조하였다. 이른바 육진(六鎭)의 하나로서, 석축의 성벽은 둘레가 3,240척이었고, 성 안에 우물 2개가 있었다.
본래 흙으로 쌓았던 성벽이 석축으로 바뀌고, 또 퇴축(退築 : 성을 더 넓혀 쌓는 것)하여 조선 후기에는 둘레가 5000척에 이르렀고, 높이가 9척이나 되었다.
또한 샘이 5개, 곡성(曲城 : 성벽 바깥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부분)이 5개,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217개,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3개, 포루(砲樓)가 6개 있었다. 시가지가 발전하면서 허물어져 현재는 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