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검지 ()

상주 공검지
상주 공검지
산업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던 고대 저수지.
이칭
이칭
공갈못
유적
관련 국가
신라
관련 인물
최정분(崔正份), 홍귀달(洪貴達)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상주 공검지(尙州 恭儉池)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농업/관개시설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기념물(1997년 09월 29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비재로 1333 (공검면) 외 68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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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공검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던 고대 저수지이다. 공검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등과 함께 삼한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때인 1195년(명종 25) 상주의 사록이었던 최정분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그대로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전한다. 1959년 상류에 오태저수지를 건설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옛터에는 연못 조성과 함께 상주공검지역사관이 2012년에 건립되었다.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에 있던 고대 저수지.
발굴 경위 및 결과

2005년부터 2011년까지 4차례의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문으로 추정되는 목부재들이 출토되었고, 제방 축조는 토사(土砂)를 주1 공법으로 하였음이 밝혀졌다. 발굴한 수침 목재의 경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는 대략 6~9세기, 식물규소체(植物硅素體) 분석 결과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건립 경위

공검지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등과 함께 삼한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최초 축조 시기는 삼한시대로 추정하나 확실치 않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195년(명종 25) 상주(尙州)의 사록(司錄) 최정분(崔正份)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쌓았다는 수축 기록이 전한다. 공검지의 경관을 기록한 기문으로는 홍귀달(洪貴達)의 「명삼정기(名三亭記)」가 유명하다. 전설에는 둑을 쌓을 때 ‘공갈’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를 묻어서 완성하였다거나, 시주승을 말뚝 삼아 묻어서 쌓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변천

1950년대까지 수리 시설로 기능하다가 1959년 상류에 오태저수지(五台貯水池)를 건설하면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공검지 터는 일부만 남겨 연못을 조성하고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었다. 옛터에 상주공검지역사관이 2012년에 건립되었다.

형태와 특징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는 둑 길이 860 보(步), 둘레 주2, 수심 주3, 관개면적 268 결(結) 40 부(負)라고 하였다. 연꽃이 만발하여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으며, 우리나라 최고(最古) 호수(湖水) 문학의 산실로 손꼽힌다.

의의 및 평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농업 유산으로 현재는 원래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공검지를 배경으로 발생한 「상주 모심기 소리」, 「채련요(採蓮謠)」, 그리고 많은 시문(詩文) 등이 전하고 있어 문화유산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단행본

권태을, 김기탁, 김철수, 『상주·함창 공갈못: 공검지』(상주문화원·상주산업대학교, 1995)

논문

윤순옥, 안은정, 김효선, 황상일, 「상주 공검지 일대의 고대 이후 고기후 변화와 농경활동」(『한국지형학회지』 20-4, 한국지형학회, 2013)

기타 자료

「상주 공검지 역사성 재조명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상주박물관, 2011)
주석
주1

판자와 판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일. 또는 그 판자와 공이. 우리말샘

주2

거리의 단위. 1리는 약 0.393k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주3

길이의 단위. 1척은 한 치의 열 배로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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