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2011년까지 4차례의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문으로 추정되는 목부재들이 출토되었고, 제방 축조는 토사(土砂)를 주1 공법으로 하였음이 밝혀졌다. 발굴한 수침 목재의 경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는 대략 6~9세기, 식물규소체(植物硅素體) 분석 결과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1950년대까지 수리 시설로 기능하다가 1959년 상류에 오태저수지(五台貯水池)를 건설하면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공검지 터는 일부만 남겨 연못을 조성하고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었다. 옛터에 상주공검지역사관이 2012년에 건립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는 둑 길이 860 보(步), 둘레 주2, 수심 주3, 관개면적 268 결(結) 40 부(負)라고 하였다. 연꽃이 만발하여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으며, 우리나라 최고(最古) 호수(湖水) 문학의 산실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농업 유산으로 현재는 원래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공검지를 배경으로 발생한 「상주 모심기 소리」, 「채련요(採蓮謠)」, 그리고 많은 시문(詩文) 등이 전하고 있어 문화유산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