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또는 질환이라고도 한다. 대개는 고통을 수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방향으로 악화하는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현상 중에는 외상 등의 동통이나 염증과 같이 생리반응이 포함되는 일도 많고, 부인의 생리 출혈과 같이 보통 때는 병의 증세로 인정될 것이, 오히려 정상으로 인정되는 것도 있다.
또 외상에 의한 사지의 결손과 같이 처음에는 질병이던 것이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 기형이기는 하여도 보통의 병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현상도 있다. 임상의학상으로 급성·만성 또는 형태상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기능성(機能性)의 것, 변화를 수반하는 기질성(器質性)의 것 등으로 대별하는 수가 많다.
병이 생기는 원인 및 병의 종류도 시대와 더불어 변천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병을 논하자면 자연히 질병사(疾病史)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근세는 몰라도 상고시대는 고증하는 데 곤란이 있어 아직도 완전한 질병사가 이룩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가 대륙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는 관계로 우리의 질병사가 완성되면 우리 나라 자체의 병의 양상을 밝힐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더 나아가서는 극동아시아 전체의 질병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간된 질병사로는 미키(三木榮)의 ≪조선질병사 朝鮮疾病史≫가 있고, 김두종(金斗鍾)의 ≪한국의학사≫ 가운데서 추려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병과의 관계가 생긴다. 그러므로 인류가 출현한 때부터 병도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의 의학은 개인의 병 치료에만 관여하였지 오늘날처럼 예방의학·사회의학 또는 역학적(疫學的)인 활동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병에 대한 통계적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상고 때부터 한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하고 서적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삼국시대에도 고구려·백제·신라가 각각 의학을 발전시켜서 각자 특징있는 의학서적을 저술하였다. 현재는 그와 같은 서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중국의 의서에 인용되고 있음을 보아 간접적으로 그러한 서적이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고구려에 ≪고려노사방 高麗老師方≫이라는 의서가 있어 당(唐)의 ≪외대비요방 外臺秘要方≫에 인용되어 있고, 신라에는 ≪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 백제에는 ≪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이라는 의학서적이 각각 있었다는 것을 일본에서 984년에 발간된 ≪의심방 醫心方≫의 인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 고려 중엽에 김영석(金永錫)의 ≪제중입효방 濟衆立效方≫이라는 우리 고유의 의서가 있었음을 조선시대에 발간된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가운데 인용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으나, 이런 의서들이 모두 산일되어 찾을 길이 없다. 우리 나라는 서지학적(書誌學的)으로 우수한 나라였으나 잦은 외침과 도서의 보존 소홀로 그렇게 된 것이다.
고작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의서로는 고려 중엽 후반기에 발간된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이 있으나 그것도 임진왜란 때에 일본이 탈취하여 갔기 때문에 국내에는 현존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형편으로 우리의 질병사(疾病史)를 연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어서 아직은 완전한 연구가 이룩되지 못하고 있다. 또 질병사는 그 나라만의 자료로는 불충분하며, 인접한 나라들의 질병사와 비교, 연구함으로써 병의 전파 경로 등을 밝힐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에 환웅(桓雄)이 인간사 360여 가지를 주관하는 가운데 주병(主病)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단군 개국 때부터 이미 병에 대한 국가적 관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질(疾)은 가벼운 급성인 것이고, 병은 질이 심해진 것을 뜻하는데, 보통은 두 글자를 합쳐서 질병이라고 흔히 사용한다.
당시의 병 중에서 국가적으로 가장 중대한 것은 널리 유행되는 전염병이었기 때문에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적에 역병(疫病)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다. 역(疫)은 급격하게 많은 사람을 침범하여 인명을 해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황을 자아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대한 문제였다.
당시는 미생물학적 예방이나 치료의 방법이 전혀 개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뭄·홍수·바람·지진·벌레 등의 재난 때문에 굶주림으로써 영양실조가 되어 전염병이 창궐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역은 역질(疫疾)·질역(疾疫)·여역(癘疫)·역여(疫癘)·시역(時疫)·장역(瘴疫)·온역(瘟疫)·악질(惡疾)·독역(毒疫)·역기(疫氣) 또는 시기(時氣)·시행(時行)·천행(天行)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속칭 염병(染病)이라고 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속담에 ‘염병에 땀을 못낼 놈’이라는 것은 장티푸스 같은 열병에 땀을 못내면 한층 괴로워하다가 죽는다는 말로 죽일 놈이란 악담이다. 또 민간요법에 역질이 되지 않는다는 미신적인 예방법들이 있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역질을 무서워 했던가를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역질에 관한 기사를 ≪삼국사기≫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9년(22):대역인다사(大疫人多死) ②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 9년(120):삼월경도대역(三月京都大疫) ③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16년(149):동십일월뢰 경도대역(冬十一月雷 京都大疫) ④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19년(172):경도대역(京都大疫) ⑤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8년(203):동시월도리화 인대역(冬十月桃李華 人大疫) ⑥ 내물이사금(奈勿尼師今) 34년(389):경도대역(京都大疫).
⑦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4년(471):동시월대역(冬十月大疫) ⑧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5년(483):십일월뢰 경도대역(十一月雷 京都大疫) ⑨ 문무왕 11년(671):신라다유역병(新羅多有疫病) ⑩ 성덕왕 13년(714):하한 인다질역(夏旱 人多疾疫) ⑪ 경덕왕 6년(747):추한동무설 민기차역(秋旱冬無雪 民饑且疫) ⑫ 선덕왕 6년(785):왕정월홀구질진…지13일훙(王正月忽構疾疹…至十三日薨)
⑬ 원성왕 12년(796):춘경도기역(春京都飢疫) ⑭ 흥덕왕 8년(833):동시월도리재화 민다역사(冬十月桃李再華 民多疫死) ⑮ 문성왕 3년(841):춘경도질역(春京都疾疫) ⑯ 경문왕(景文王) 7년(867):하오월 경도역(夏五月 京都疫) ⑰ 경문왕 10년(870):동무설 국인다역(冬無雪 國人多疫) ⑱ 경문왕 13년(873):춘민기차역(春民饑且疫)(백제 및 고구려는 생략함.).
간단하기는 하지만 이상난동(異常暖冬)이나 가뭄 등의 기상조건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고, 선덕왕의 병명을 질진(疾疹)이라고 한 것은 발진성(發疹性) 급성전염병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역이라는 막연한 표현 대신 증상을 나타내는 진(疹)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마[痘瘡]·홍역[麻疹]·발진티푸스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마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기도 한다. 당시의 역은 발진티푸스·장티푸스·유행성독감·학질(말라리아)·이질[赤痢]·마마·홍역 등 잡다한 전염병을 총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병의 기록을 중국 또는 일본의 기록과 연관지어 분석한다면 극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역병의 유행 경로를 밝힐 수 있을 것이며, 더욱이 마마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서 한반도에 전파된 경로도 알 수 있을 것이나 아직 그와 같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염병이란 지역의 근접성 및 교통의 빈번성과 관련되어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의서(韓醫書)이면서 우리 나라에서 산일되어 현존하지 않지만 일본에서 발간된 의서 중에 인용되어 있는 것이 있다. 현존하고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가 984년에 간행된 ≪의심방≫ 30권인데 고증학적으로 가치가 큰 문헌이다. 그 중에 한의서인 ≪백제신집방≫과 ≪신라법사방≫의 두 책이 인용되고 있다.
인용된 구절 중에 병명과 약방문이 나오는데, 그것을 통하여 당시 한반도에 존재하던 역병 아닌 병명을 고증할 수 있어 흥미롭다. 병명으로는 폐옹(肺癰)·정종(丁腫) 또는 정창(丁瘡)·적취(積聚)의 셋을 채집할 수 있는데, 각각 오늘날의 폐괴저(肺壞疽)·농양(膿瘍)·복부결체(腹部結滯) 등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은 질병의 약방문을 한의서에서 찾았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우리의 한의학이 우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법사방≫의 복약주문(服藥呪文)도 인용되고 있는데, 질병이 정령귀신(精靈鬼神)의 노여움으로 비롯된다고 하여 귀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이 치료법의 하나라고 믿었던 당시의 질병관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또 역사책인 ≪삼국사기≫에는 신경쇠약증에 해당되는 “혼혼묵묵정신불쾌(昏昏嘿嘿精神不快)”라는 증상이 기재되고 있으며, 종기에 해당되는 옹(癰)이라는 병명도 나오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여질·악질·질제(疾瘵) 등의 병명이 보이고, 오늘날의 중풍이나 간질병[癲癎]에 해당되는 증상인 “홀구금체경불언불수(忽口噤體硬不言不遂)”라는 기록도 보인다.
고려시대의 질병을 고증할 수 있는 자료로는 현존 의서로 ≪향약구급방≫ 하나밖에 없으며, 그것조차 국내에는 보존되지 못하고 임란 때에 왜군이 약탈하여 현재 일본의 궁내성 도서료(圖書寮)에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은 고종(高宗) 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자 그대로 우리 나라에서 산출되는 약재인 향약(鄕藥)으로 구급치료(救急治療)를 하는 민간치료법 책이다. ≪향약구급방≫에 실려 있는 병명을 보아 발간 당시의 질병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나, 워낙 구급이 필요한 질환만을 모아 간략한 증상과 간편한 치료법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병인에 대한 병리설(病理說)은 알아볼 도리가 없으며, 망라된 병명 및 종류는 대체로 중국의서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향약구급방≫은 우리 고유의 약방서로서 특히 권말에 수재되어 있는 <방중향약목 方中鄕藥目>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 산출되는 향약 약 180종에 대하여 성상(性狀) 및 채취법 등을 기록한 것인데, 이두로 표기된 향약명이 한방명과 아울러 병기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본초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향명(鄕名)을 아는 데 있어서도 가장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사≫도 고려시대의 질병을 아는 데 있어서 자료가 되겠지만 질병관계의 기록은 극히 드물다. ≪고려사≫에 비교적 자주 나온 병명이 학질·저(疽)·동(0x9C2F)·임질(淋疾)·악질 등인데, 학질은 말라리아, 저는 악성인 종기, 동은 종(瘇)과 같으며 종(腫)을 뜻하고, 임질은 ≪향약구급방≫에서는 ‘소변삽불통야(小便澁不通也)’라고 되어 있어 성병인 임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려사≫의 충숙왕 8년 기묘 5월 15일 기록은 성병인 임질인 것 같고, 악질은 나병(癩病)으로 보이는데, 효자가 그의 아비의 악질을 고치기 위하여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모르게 먹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렇게 추측된다.
≪고려사≫에 기록된 전염병 유행은 질진·장역·온역·질역·역여 등으로, 기록된 것으로 치면 경종 때 1회, 성종 1회, 현종 2회, 숙종 2회, 예종 3회, 의종 2회, 명종 1회, 고종 4회, 원종 1회, 충렬왕 1회, 충목왕 1회, 공민왕 3회로 기록되어 있다(1년 내의 횟수는 계산에 넣지 않고 1회로 하였음.). 이와 같은 유행성전염병의 구체적인 병명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장티푸스·발진티푸스·악성유행성 감기·마마 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향약구급방≫의 병명 중에서 오늘날의 유행성전염병에 해당되는 것은 전후풍(纏喉風)·마후비(馬喉痺)·이질·시기병(時氣病)·완두창(豌豆瘡)·온역(溫疫 또는 瘟疫)이며, 오늘날의 병명으로는 각각 악성인 급성편도선염·디프테리아·적리(赤痢)인데, 시기병은 분명하지 않으나 마마·장티푸스가 아닐까 추측된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문화를 계승하고 대륙의 명(明)나라와 관계를 지니면서 빛나는 문화의 발전을 이룩하여 세종 때는 의학에서도 우리 나라 의학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더욱이 의료의 자주화를 꾀하여 향약장려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시기이기도 하여 국민보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이후에는 국내 정치의 혼란과 임진왜란을 비롯한 외침이 잦아서 문화발전이 침체 쇠퇴하다가 영조·정조 때 와서 다시 부흥되기 시작하였으나 크게 발전을 보지 못한 채 다시 쇠퇴기의 말기를 맞아 드디어 일본에게 병탄된다.
말기에는 고집스러운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들이닥치는 개화의 조류에 따라 점차 서양의학의 세례를 받아 드디어 현대문화로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상병(傷病) 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상병분류법에 의하면 질병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① 전염성 및 기생성 질환, ② 이상신생물(異常新生物), ③ 알레르기성·내분비계·대사성 및 영양 질환, ④ 혈액 및 조혈기관의 질환, ⑤ 정신신경 및 인격장애, ⑥ 신경계 및 감각기관의 질환, ⑦ 순환계 질환. ⑧ 호흡기계 질환, ⑨ 소화기계 질환-치아 질환 포함, ⑩ 생식비뇨기계 질환, ⑪ 분만과 임신·출산·산욕의 병발증, ⑫ 피부 및 세포 조직의 질환, ⑬ 뼈 및 운동기관의 질환, ⑭ 선천성 기형, ⑮ 신생아의 특정질환, ⑯ 증상·노쇠 및 병적 상태, ⑰ 사고·중독 및 폭행 등이다.
이와 같은 상병상황을 통계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조선시대의 비교적 풍부한 자료로써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질병사도 자연히 사서(史書)에 기록되어 있는 역질의 통계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각종 질병에 대한 변천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역병의 유행상황을 조선왕조실록 등 사서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역병으로는 장티푸스·발진티푸스·유행성독감을 비롯하여 콜레라·홍역·마마·성홍열·유행성뇌척수막염 등 유행성전염병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생물학을 근거로 하는 임상진단학이 개발되지 못하였던 관계로 병명도 모호하여 일정하지 않고, 역질·여역·홍역·홍진·진역·악질·악역·악병·괴질·당홍역(唐紅疫)·두창·한질(寒疾)·윤행질(輪行疾)·진두(疹痘)·창진(瘡疹)·온역·시역·열병·염병·독역·홍독역·천행반진(天行斑疹) 등으로 표현되어 정확한 병명을 판별하기가 힘들다. 심지어는 영양 장애에 의한 사망도 역사(疫死)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
역병 유행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추려 보면 약 150회에 이르고, 환자 수효와 사망자 수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보면 당시에도 유행성전염병에 대한 보건행정적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전염성 질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도 귀신설(鬼神說)을 신봉하여 무속적인 예방법이 민간에 유행하고, 심지어는 관(官)에서 여역제(癘疫祭)라는 것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의학서적에 나타난 역병의 원인을 찾아보면 ≪향약집성방≫에서는 기후가 불순하면 생긴다는 설(節氣不和寒暑乘候說, 瘴氣說)을 주장하고, ≪간이벽온방 簡易辟瘟方≫에서는 귀여지기(鬼癘之氣)·예악훈증(蘂惡薰蒸)·원한(怨恨) 등을 병의 원인으로 삼고, ≪신찬벽온방 新纂辟瘟方≫에서는 음양오행설에 의한 운기설(運氣說)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두창(痘瘡)이나 홍역에 대해 현대역학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비교적 정확하고 타당성 있는 의서가 발간된 것을 보면, 우리의 선조들 중에서도 과학적 또는 실학적인 의학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는 중국대륙에 연결되어 있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3국간의 상호 전염병의 유통전파 상황을 연구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홍역·마마·콜레라·유행성독감 등에 있어서 상호 연관성이 있었으리라는 자료들이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페스트[黑死病]가 인접한 중국에는 있었지만 한반도에는 침입한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호기심이 가는 전염성질병으로는 성병을 들 수 있는데, 임질은 옛부터 존재하였으리라고 추측되나 옛 의서의 임(淋)이라는 표현이 모두 임균에 의한 임질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매독은 순전히 1495∼1496년경에 미대륙에서 유럽으로 도입된 것이 전세계로 퍼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도입된 경로를 추적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매독은 천포창(天疱瘡) 또는 양매창(楊梅瘡)이라고 하였으며,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정덕(正德) 연간(1506∼1521) 후반에 북부 중국에서 육로로 전래되고 임진·정유 왜란 때 더욱 국내 전파가 가속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럽에 매독이 상륙한 지 10년쯤 경과된 뒤인 홍치(弘治) 말년(1505)에 광둥(廣東)에 전파되고 다시 광둥에서 북으로 올라와서 대륙 각지에 퍼지게 되고, 연경(燕京)을 내왕한 우리 나라 사신들에 의하여 국내에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병은 원래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은 서남방 계통의 병일 것이나, 상고시대부터 중국으로 전파되어 그것이 한반도에도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병에 해당되는 우리 고의서(古醫書)의 명칭은 여질·악병·악창·대풍라·대풍질·대풍창·용병(龍病) 등으로 되어 있으나, 여질·악병·악질·악창 등은 나병 아닌 전염성 질병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나병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나병의 병인이 감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옛책에서는 ① 악풍(惡風:大風·癘風·麻風)이 체내에 침입하여 생긴다는 설, ② 전염설, ③ 천형설(天刑說), ④ 귀신설(鬼神說) 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한반도는 기후·풍토 등이 건강 유지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는 탓인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유한 토착병이나 풍토병이 없음은 다행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영양실조와 환경 위생 미비 등으로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과거에는 상병구조(傷病構造)가 주로 감염병으로 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은 감염병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 사망 원인이 되지 못하고, 그 대신 퇴행성만성병인 뇌졸중·암·심장병·간장병·당뇨병의 다섯 가지가 주요 사인으로 되고 있음을 볼 때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앞서 현대의 질병분류법을 소개하였지만, 우리 나라 고유의서에 실려 있는 질병의 분류를 대조하여 보면 각 시대의 질병에 대한 지식을 총괄적으로 알 수 있다. 질병분류방식은 증후분류(證候分類)·병인분류(病因分類) 및 부위분류(部位分類) 등이 있는데, 병의 증상이 같은 것끼리 모아 분류하는 방식인 증후분류방식이 가장 흔하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우리 의서인 ≪동의보감≫의 질병 분류를 알아보기로 한다. ≪동의보감≫의 질병 분류는 종전의 중국 및 한(韓) 의서와는 달리 특수한 편찬형식과 질병 분류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신체의 부위별 분류방식 및 증후분류방식을 병용하면서 원인에 의한 분류도 가미하여 한방의학서로는 실학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잘 통일되고 진보된 분류방식으로 되어 있다.
질병 전체를 내경편(內景篇)·외형편(外形篇)·잡병편(雜病篇)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내경편에서는 신체 내부에 있는 정(精)·기(氣)·신(神)·혈(血)·언어·충(蟲)·대변·소변 등의 유형 무형의 질병을, 외형편에서는 신체 표면의 각 부위의 질병을, 잡병편에서는 내경·외형 두 편에 속하지 않는 각종의 질병, 그 밖에도 부인·소아의 여러 가지 질병을 총괄하여 수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독창성 있고 합리적이며 편리한 질병분류방식을 채택한 ≪동의보감≫이기 때문에 그 많은 중국·일본 및 한국의 한의서 중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병과 관련시켜서 사인별 사망 통계라든가, 평균 수명의 역사적 추이, 인구 통계 등도 아울러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나 현대를 제외하고는 자료가 거의 없어 분석이 불가능하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자는 크게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그리고 나이로 대별 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감수성과 저항력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 유전적 요인으로서 선천성 질병들은 염색체 수의 이상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들이다. 고혈압·당뇨병·혈우병·통풍 등의 질병 발생도 유전적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환경적요인도 병의 발생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병의 발생의 삼대요소로서 숙주(환자)·병원체·환경을 꼽고 있다. 이 환경적 요인에 영양소, 생물병원체, 화학물질, 물리적 요인, 건강습관과 건강위해 인자들이 포함된다. 더 나아가서 사회와 가족의 형태와 건강상태의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근대 이후 사회의 발달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고, 이제 컴퓨터와 전자사회, 핵의 시대가 혼재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장차 우주시대가 우리의 미래에 있다면 그 시대, 그 사회를 반영하는 병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 농경사회나 반상의 구분이 엄격한 계급사회에서는 수요에 의하여 의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실과 양반계급에 의료가 공급되고 일반백성들을 위한 베품의 의료와는 구분되어 있었다. 혈연을 강조하고 대가족의 형태를 중시하는 근대사회에는 신생아의 출생율이 높고, 영유아의 사망률이 높으며, 산욕열에 의한 산모의 사망률도 높았다. 또 일반 사람들의 사망율도 높아서 인구의 증가가 완만하고 두드러지지 못 하였고, 병은 주로 급성 감염성 질병들과 각기병·괴혈병·구루병 같은 영양결핍에 의한 질병과 선천성 질병 등이 문제가 되었다.
계급사회에서 일반 백성들은 질병을 건강과 별개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질병은 전생이나 이승에서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므로 병에 걸려서 아픈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또 질병을 귀신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여 일반백성들은 감염성질환이 퍼지는 지역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굿을 하였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정부에서 제관을 뽑아 제사를 지냈고, 유교 위주의 사회에서 불교식 수륙제를 지내어 질병을 퇴치하고자 하였다.
전염병에 의하여 전체인구의 5%이상이 사망하기도 하였다니, 이는 전쟁에 의한 사망률보다 높았다고 한다. ‘등 따시고 배 불리 먹는 것’이 백성들의 소원이었고 정부의 복지정책 목표라고 할 수 있으며, 병에 대한 개념이 생노병사의 일환으로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 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개념은 건강과 심한 질병상태의 구분은 할 수 있지만, 아프고 병들어 생산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와 몸이 불편하고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간에 경계선은 모호하고 불명확한 것도 사실이므로 병과 건강이 일직선상에서 존재하는 연속적인 개념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깨끗한 물, 충분한 영양분 섭취, 쾌적한 주거환경은 감염성 질환을 포함한 질병예방 및 건강유지의 필수 조건이다. 이 건강의 필수 삼대요소가 충족되지 못한 지역은 현재까지도 환경자원 결핍과 더불어 말라리아·결핵·설사병·성병 등 감염성 질환들이 주 질병, 주 사망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1850년∼1900년에 이미 프랑스의 파스퇴르(Pasteur, L.)와 독일의 코크에 의하여 질병의 병균설이 대두되었다. 1895년에 엑스레이가 발명되었고 1906년에 심전도가 발명되었으며, 우두접종은 1796년에 영국의 제너(Jenner, E.)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870년에 영국의 리스터에 의하여 무균수술이 소개되어 외상의 감염예방을 시행하였다. 1910년에 미국의 프랙스너는 전국 의과대학의 평준화를 꾀하여 기초 2년, 임상 2년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확립시킬 시기에 우리 나라는 한일합방이 진행되었다.
1880년대에 한국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든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의 감염 때문에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으로서 주로 오염된 물과 어패류에 의하여 인체에 감염되어 소장에 병변이 진행되며, 쌀 뜨물같은 설사를 굉장히 심하게 하고, 구토·근육경직·탈수·핍뇨(乏尿)·허탈상태가 초래되며, 수액요법을 시행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이 질병의 유행은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하게 하였다.
콜레라는 걸리면 사망하는 역병으로 호랑이 호자, 호열자(虎列刺)라고 명명하였다. 수인성 전염병이므로 환자가 배설한 오물처리를 철저히 하고, 마시는 물의 소독을 철저히 하고 물을 끓여 마시고, 야채와 생선을 충분히 익혀서 먹어야 한다. 위생과 소독, 병원균의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음으로 해서, 이를 예방하고자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한 것이다.
콜레라가 농사철인 4월∼8월에 유행하여 이로 인하여 노동력을 상실한 환자들이 농사를 할 수 없고, 수확할 거리가 없어서 굶주리고 아이들을 버리고 유리걸식을 하니 가족해체를 초래하였다. 일반백성들의 의식은 ‘굶주림은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라고 자위하는 수준이 아니었나 한다. 건강의 삼대요소 중 한 가지도 충족시킬 수 없는 사회였으므로 당연한 사회구조적 결과에 의한 질병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오염방지보다는 몇 시에 어디서 길어 온 물이라는 등의 물의 종류에 더 의미를 두었다. 깨끗한 마실 물의 확보보다는 우물을 마시고 우물가에서 오물에 오염된 옷을 포함한 빨래를 빨고, 개울물을 마시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여 수인성 질환이 한 번 발생하면 그 파괴력이 컸다. 여름장마 때 인분을 포함한 모든 오물이 넘쳐 흘러서 물을 오염시켰다. 따라서 수인성 질병들의 전염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고,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하여 채소가 오염, 각종 기생충감염증이 발생하는 것도 당연한 귀추이다.
병이 걸리면 농사를 못 짓고, 농사가 안되면 먹을 거리가 없어 영양상태가 나빠지고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영양소는 생명유지의 필수조건이다. 영양소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병은 위에서 언급한 각기병·괴혈병·구각염·야맹증·빈혈 등을 꼽을 수 있다. 영양실조는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려서 병원균 같은 병의 원인에 폭로되면, 곧 발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은 영양섭취의 과도함으로 인하여 영양 불균형에 의한 비만·고혈압·당뇨병·동맥경화증과, 각종 암 등의 병이 발생하고 있다. 근대 조선에서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 까지는 영양소 섭취결핍과 기생충, 곤충 및 생물체 매개 전염병이 주된 병의 원인이었다. 현대 사회에서조차도 어느 나라이건 미개발국가에서는 감염성질환이 콜레라·장티프스 등 수인성 전염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외상이나 창상, 피부감염, 파상풍 등이 병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2000년까지 모든 사람이 건강하기를 목표로 한 국제보건기구의 1978년 알마아타선언에는 흔한 질병에 관한 건강교육과 예방, 마실 물의 질, 영양공급, 주거환경, 그리고 기본위생 등의 일상생활 습관, 모자보건, 가족계획, 감염성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 지역 토착병의 예방 등을 강조하였다. 흔한 질병과 외상의 적절한 치료, 필수약의 공급 등은 우선순위에서 하위로 배치하였다.
깨끗한 물과 충분한 음식, 위생환경 등이 건강을 호전시키고 영아사망율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고, 미개발국가에서는 전체 사망률의 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었다. 일부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의학지식과 치료의 발달은 전반적인 사망률에 미치는 효과가 비교적 적다고 평가하였다. 깨끗한 물 공급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개선의 효과는 콜레라·장티프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에 의한 사망률을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결핵이나 폐렴같은 비수인성 질환의 발생도 예방하여 이로 인한 사망율을 감소시켰다. 그 정확한 기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효과를 Mills-Reinke phenomena라고 한다.
환경개선이 일반인들의 건강과 질병발생에 강력한 파급효과(ripple effect)가 있다는 사실이 역학조사에서 증명되었다. 미국에서 성홍열의 특효약인 페니실린이 1940년에 발명되기 훨씬 이전인 1920년대에 벌써 현저한 감소를 보였고, 1944년 아이소나이아지드가 나오기 이전에 결핵이환율과 사망률이 감소되었으며, 크로람페니콜 이전에 벌써 장티푸스 발병율이 감소되었던 것이 환경개선의 효과였던 것이다.
1960년대 한국에 산업화·도시화에 의한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불어 닥치면서 가족의 형태는 대가족 형태가 붕괴되고 변형되면서 핵가족화하고 병의 형태도 바뀌게 된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물과 대기오염이 심각하게 되고 각종 산업장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석면가루·배기가스 등 새로운 병의 원인요소들이 등장하였다. 고무·살충제·플라스틱제품·도료 공장 등에서의 아니린은 메트헤모그로부린혈증을 유발시키고, 한국에서의 주력수출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산업에서 비소중독, 축전지·케이블 피막·전기용접 등에서 납중독, 가죽공장에서의 구리중독 등의 중금속 중독이 유발될 수 있다. 이온화 방사능의 재생불량성빈혈, 유리공장이나 광부들의 규폐증, 진폐증, 이황화탄소에 의한 심혈관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한국의 사회로 이동하면서 질병의 양상은 감염성질환으로부터 만성퇴행성질환으로 전환되어 각종 암, 비만, 당뇨병, 고혈압, 각종 사고와 이들에 의한 합병증이 병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영양과 감염성질환을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질병매개 곤충을 살충제로 구제를 하고 기생충의 구제, 물의 소독과 예방접종, 영양공급의 호전, 주거환경의 개선, 그리고 가족계획과 피임 등으로 모자보건이 향상되었다.
그 결과 모자사망율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일반인들의 사망률도 감소하였다. 수명이 연장되어 인구증가가 이루어졌다는 사회변화를 병에 반영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경제력이 성장하여 인구의 현격한 증가에 따르는 기아문제가 대두되지 않고 질병의 양상이 선진국의 질병양상으로 변화한 것이다. 또한 노인인구층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노인병의 증가가 초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