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약사 ()

목차
의약학
제도
삼국시대 때 일본의 난파(難波: 일본음은 나니와)에서 의술을 베풀던 우리나라 의인(醫人)들의 총칭.
목차
정의
삼국시대 때 일본의 난파(難波: 일본음은 나니와)에서 의술을 베풀던 우리나라 의인(醫人)들의 총칭.
내용

시초는 백제의 덕래(德來)로부터 시작되었다. 덕래는 원래 고구려 사람이었으며 뒤에 백제에 귀화하였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의약학자이다. 459년 일본의 요청에 의하여 일본으로 가서 현재의 대판(大阪)에 해당되는 난파에 정착하여 우리 의약학을 일본에 전수하였다.

그의 자손들도 대를 이어 난파에서 의업을 전공하여 일본 세의(世醫)의 문벌이 생긴 시초이며 난파약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당시 난파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지였으며 일본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덕래의 5세손인 혜일(惠日)이 당나라에 파견되어 당의방(唐醫方)을 직접 일본에 도입한 사실을 볼 때, 삼국시대의 의약학자가 일본 의약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김두종, 탐구당, 1979)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 속편(續編)』(최남선, 동명사, 1947)
『朝鮮醫學史及疾病史』(三木榮, 日本 大阪, 1963)
집필자
홍문화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