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중에는 문과 출신으로서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의료행정을 겸무하였으며, 왕실에 질환이 있을 때 다른 의관과 함께 입시하여 함께 진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의원(內醫院)을 비롯한 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의 제조(提調)들 중에 흔히 볼 수 있듯이, 고관의 권신들은 비록 의학에 대한 지식이 정통하더라도 실제로는 유의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한편, 문과 출신이면서 높은 관직에 참여하지 못하고 여기(餘技)로서 의학을 연구하여 그 지식을 가지고 의서의 편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선조시대의 사족(士族) 출신으로 좌랑을 지낸 정작(鄭碏)이 유의로서 『동의보감』의 편찬에 참가하였다.
또, 사족 출신이나 음관(蔭官)의 자제로서 선발되어 습독관(習讀官)이 되고, 또 전의감·혜민서에서 의학교수관이 되어 의학교육과 연구에 힘쓸 뿐, 의술업에는 직접 종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는데, 유의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이 계급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