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변사자의 사인(死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문서양식.
내용
1419년(세종 1) 2월에 검시의 문안(文案)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무원록(無寃錄)』의 예를 따라서 날짜를 명확히 기입하도록 하는 형조(刑曹)의 주청(奏請)이 있었다.
1432년(세종 14) 2월에는 중외관리(中外官吏)들에게 검시를 할 때에는 반드시 임검(臨檢)하게 하였으며, 1439년(세종 21) 2월에는 한성부(漢城府)에 명하여 검시장식을 간행하게 하여 각 도 관찰사 및 제주 안무사(按撫使)에게 그 간판(刊板)을 모인(模印)하여 도내의 각 관리에게 반포하게 하였다.
또 1446년(세종 28) 5월에는 검시장식을 정하여 형조로 하여금 간행, 반포하게 한 다음 한성부 및 각 도에 보내어 장부를 만들어 명백하게 기록하게 하였다. 인명치사에 관한 사건이 있을 때에는 그 시체가 있는 곳에서 검증을 한 다음, 검시장식을 따라 시체검안서를 만들어 재판을 실행하게 하였다.
『무원록』은 원나라 무종(武宗)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세원록(洗寃錄)』 · 『평원록(平寃錄)』 및 『결안정식(結案程式)』 등을 참작하여 편성한 검험(檢驗: 검시)의 전문서이다. 이 책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문헌상으로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 원년(1419) 2월조에 볼 수 있고, 세종 20년(1438) 11월조에 이 책에 음주(音註)를 달아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제3 예전(禮典)에 율과(律科)의 초 · 복시(初 · 覆試)에 필수과목으로 되었고 살상검험(殺傷檢驗)의 재판에 관여하는 중앙 및 각 지방의 형률관(刑律官)들에게 널리 채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식을 응용하는 데는 먼저 다음과 같은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① 초검(初檢): 살인사건이 났을 때에는 시체가 있는 곳의 지방관이 먼저 제1차 시체검험, 즉 초검을 한 다음 검안서를 『무원록』의 시장식(屍狀式)에 의하여 만들어 상부관리에게 제출한다.
② 복검(覆檢): 초검관은 인근 지방관에게 제2차 검험, 즉 복검을 하게 하는데 초검관이 그 내용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별칙이 규정되어 있다. 복검관이 독자적인 검안서를 만들어 초검관과 함께 상부관리에게 제출한다.
상부관리에게 제출된 검안서가 초 · 복검관의 의견이 일치할 때에는 이것으로 그 사건이 결정되나, 만일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혹은 그 검험에 의심이 있을 때에는 상부관리가 다시 삼검관(三檢官)을 명하게 된다.
③ 삼검(三檢) · 사검(四檢)과 오사(五査) · 육사(六査): 삼검은 중앙에서는 형조에서 낭관(郎官: 六曹의 5∼6품급 문관)을 보내고, 지방에서는 관찰사가 차원(差員∼지방관아의 관리)을 정해 다시 검험을 한 뒤에 초 · 복검관들의 검안서를 참작해 최후의 판결을 내리게 되나 사건에 따라서는 사검 내지 오사 · 육사를 거치는 일도 있으며 혹은 국왕에까지 직소(直訴)하는 일도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고사촬요(攷事撮要)』(어숙권)
- 『한국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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