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1897년 「소학교령」(고종 32년 칙령 145호)에 의거 무안읍 향교 양사제와 그 압전을 토대하여 ‘무안공립소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였다. 1901년김봉규(金奉珪)가 당국에 요청하여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당시 목포에는 사립 일신학교(日新學校)가 있었는데, 그 뒤 흥진학교(興進學校)로 개칭되어 무안공립소학교와 경쟁적으로 운영되었다. 이 결과 전교생이 1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교세가 약화되었고 이에 일본인 교감이 취임하여 두 학교를 합병하였다. 1907년 4월 통감부의 신교육령에 의하여 목포공립보통학교로 개칭, 인가하여 같은 해 11월 정식 개교하였다.
당시 노인정 건물을 가교사로 한 4년제 학교로 출발하였으며, 이듬해인 1908년 무안읍 교육부인회에서 운영하던 여자부를 합병하고 건물 1동도 기부받았다. 1911년 11월 4년제 목포공립보통학교로 재인가되어 남학생 182명, 여학생 74명으로 편성하였다. 1923년 여자부를 분리하였다가 1928년 다시 합병하였으며, 같은 해 부설 유달학교(儒達學校) 2개 학급을 설치하였다가 1927년 이를 병합하였다.
그 뒤, 교명이 1932년 목포제일보통학교, 1938년 목포심상소학교, 1940년 목포북교공립심상고등소학교, 1941년 목포북교공립국민학교로 각각 개칭되었다. 광복 후 1946년 7월에는 목포북교국민학교로, 1996년 3월에는 목포북교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년 7월 교육부 지정 인성 교육 시범 학교 운영 보고회를 개최 하였으며, 2000년 9월꿈동산(다목적 강당)을 준공하였다. 2004년 9월 교육인적자원부 지정 e-learning 연구학교로 지정 되었다.
2010년 현재 17학급에 재학생 451명, 교원 39명이다.
2010년 101회 졸업식 때까지 총 3만 1,09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육목표는 ‘도덕인, 건강인, 자주인, 창의인’를 기르는 데 두고 있다. 매년 개교기념일에는 예술제를 개최하여 어린이의 개성신장은 물론, 건전한 취미와 기능발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이 학교는 목포 지역의 대표적 근대교육의 발원지로서 광복 직후 1946년 2월 신교육사조에 의한 교육연구발표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49년 민주적 민족교육연구발표회, 1955년 도지정 특별활동연구발표회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교육부지정 시청각교육 연구보고회, 도지정 과학교육시범학교 운영보고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교육부지정 교과용도서 실험연구학교로 지정되는 등 교육연구센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