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초 『조선일보』에서 향토 노래 현상 모집을 실시했고, 거기서 당선된 가사에 곡을 붙여 9월 신보로 발매되었다. 1936년 일본에서는 「와카레노후나우타(別れの船歌)」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고 애상적인 멜로디는 일본인에게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 한다. 모두 3절로 된 노랫말의 1절은 다음과 같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 때
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4분의 2박자, 라단조, 약간 빠른 빠르기의 자유로운 형식의 곡이다.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로 시작되는 2절의 가사가 문제되어 가사지를 인쇄할 때에는 고친 가사를 표기하기도 했다.
작사자와 가창자가 모두 목포 출신인 이 곡은 일본식의 곡풍을 지녔으나 지금도 끊임없이 불리고 있는 곡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곡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 최초의 대중 가요 노래비가 목포의 유달산 중턱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