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필본. 신덕균의 친아우되는 의균(義均)이 신덕균 생존시의 견문을 말한 것과 또 고창(高敞) 사람 염동균(廉東均)이 신덕균과 함께 옥살이 할 때 신덕균이 지은 시를 암송해준 것, 그리고 그밖에 신덕균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하여 기술하였다.
기록 가운데는 시 2수, 가사(歌辭) 1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의 조선침탈 과정을 비롯하여 최익현(崔益鉉)의 순창(淳昌) 의거를 지지하는 내용과 신덕균이 의병을 일으킨 사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당시 신덕균은 고광순(高光洵)의 족질(族姪) 고재봉(高在鳳)과 같이 담양(潭陽) 산중에 웅거한 고광순을 찾아가 의병진을 편성하였다.
고광순은 도독(都督), 신덕균은 도총(都摠)이 되어 일본군과 항쟁한 내력, 그뒤 고광순·고제량(高濟亮) 등이 연곡사(燕谷寺)에서 순국하자 나머지 의병을 이끌고 재기한 신덕균이 가산(家産)을 정리하고 새로이 무기를 구입하여 항쟁을 계속하였다는 것을 기록하였다.
신덕균이 마침내 적에게 붙잡혀 1908년 11월 마지막 순간까지 큰소리로 적을 꾸짖고 만세를 세번 부른 뒤 적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 등도 낱낱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신덕균의 창의 사실은 당시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신덕균의 손자 항복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