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여연군(閭延郡)의 상무로보(上無路堡)였는데, 1436년(세종 18) 이곳에 만호(萬戶)를 두었고, 1440년 이 보(堡)가 여연과 거리가 멀어 여연의 출합손량(出哈孫梁)과 후주(厚州)의 포산(甫山) 등을 떼어 무창현을 설치하였다.
1442년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455년(세조 1) 이 지역의 4군을 없앨 때 관할을 강계부(江界府)로 넘기고 주민은 구성부(龜城府)로 옮겼다. 1869년(고종 6)후주와 무창을 합하여 후창군(厚昌郡)을 설치하여 평안도의 관할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포도천(葡萄川)이 압록강으로 흘러드는 삼지평(三之坪) 일대를 차지하였던 곳으로, 포도천 상류의 아산령을 넘어 강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는 무창창(茂昌倉)이 있었고, 부근의 가사동(家舍洞)에는 옛 진보(鎭堡)가 있었다. 지금의 동신면 무창동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