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권으로 되어 있으며 ‘소명문선’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실린 문장가는 130여 명으로, 이 가운데 무명작가의 고시(古詩)와 고악부(古樂府)도 포함되어 있다. 순서는 문체별로 부(賦)·서(序)·논·제문 등 39종으로 나누었으며, 시는 443수이고 나머지 작품은 317편을 수록하였는데 그 중 부가 가장 많다.
소통은 자신의 서(序)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주로 침사(沈思:깊이 생각함)·한조(翰藻)의 내용과 형식의 글을 취하였는데, 이는 그의 문학관인 동시에 당시 일반 학자들의 공통된 경향이기도 하였다.
『문선』은 수(隋)나라 때에 이르러 널리 알려졌고 당나라에 와서 성행하였다. 그 가운데 이선(李善)이 주석한 『문선』이 가장 유명하며, 그는 각 권을 둘로 나누어 60권으로 편찬하였다.
그 뒤 현종 천원(天元) 6년(718), 당시의 공부시랑 여연조(呂延祚)가 여연제(呂延濟)·유량(劉良)·장선(張銑)·여향(呂向)·이주한(李周翰) 등 5명을 모아 주를 달게 한 것이 이른바 『오신주(五臣註)』이고, 거기에 이선의 주를 합하여 『육신주문선(六臣註文選)』이라고 한다.
송나라의 대중상부(大中祥府) 9년(1016) 처음으로 『문선』이 교각(校刻)되면서부터 이를 전문으로 배우는 이른바 선학(選學)이 생기게 되었고, 일찍이 한유(韓愈)·두보(杜甫) 등도 『문선』을 존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당나라 때는 사부(詞賦)로써 선비를 등용하였으므로 문선학이 아주 성행하여, 마침내 육경(六經)에 견주게까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독서삼품과의 상품(上品) 시험과목으로 『논어』·『효경』·『예기』·『춘추좌씨전』 등과 함께 부과되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문을 엮어 『동문선』이라 하기도 하였다. 이 『문선』은 우리나라 한문학에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