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출생. 독학으로 음악수업을 하였고, 공연과 무성영화 반주악단원으로 연주활동을 하였다.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 개국기념방송에 반주악단으로 대중가요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1930년대 초 백명곤(白命坤)의 ‘코리아 째즈밴드’의 단원으로 활약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지방순회극단의 막간(幕間) 여흥에 연주와 편곡을 담당하여 인정을 받았다. 1934년 박부용(朴芙容)이 부른 신민요풍의「노들강변」을 작곡,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31년 이후 유행하였던 일본의 엔가풍(演歌風) 가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주도 민요인 "오돌또기"를 채보하는 등 한국적인 민요조의 가요를 주로 발표하였다. 대표작으로는「노들강변」외「봄맞이」·「앞강물 흘러 흘러」·「섬색시」등이 있다. 1982년 성장지 김천에 노래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