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2월 『민성(民聲)』 통권 제32호에 발표되었다.
미술학도인 득심은 병중에 있는 어머니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문학도 현배와 우중(雨中)의 산속에서 한때를 보내다가, 현배가 황도(皇道) 문학파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증오와 배반의 감정으로 그와 결별한다.
정치에 투신하겠다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뒤, 아편쟁이가 되어 몸에 화인(火印)을 찍은 중국 여인 매란의 과거 속에 현배와 자신의 입장을 투사하고, 득심은 집에 갇혀 눈먼 동생 득매를 그리면서 보낸다. 현배를 친일파로 단죄하고, 득매를 윽박지르는 득심에게 어머니는 득매의 눈을 멀게 한 장본인이 바로 득심 자신이므로 그녀가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없음을 알린다.
이후 득심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어느 날 득심은 현배를 찾아, 마치 무덤 앞에서 하는 것처럼 현배와의 관계에 제의를 지내고 동생과 함께 머무르던 산장을 떠난다.
이 작품에 나타난 작자 특유의 자연과 본능이 조화된 에로티시즘의 세계는, 식민지시대의 민족적 역사성의 맥락에 접목되면서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심화하고 있다.
작품에서는 득심이 현배에 대한 감성적 사랑을 이기고 친일 문학도라는 이유로 현배를 단죄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일방적인 단죄 자체가 문제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득심 또한 현배의 역사적인 오류 못지않게 동생의 눈을 멀게 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득심으로 하여금 그녀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포용의 길을 택하게 한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문화사대계」는 외적·역사적 현실뿐 아니라 내적·개인적인 현실의 양가성 위에서 엮어져야 함을 득심과 현배, 매란과 그녀의 연인, 득심과 득매의 관계를 통하여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