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혜(勿阿兮) 또는 수입(水入)이라고도 하였는데, 신라의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무주(武州) 관할의 무안군으로 고쳤고, 944년(혜종 1)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다. 991년(성종 10) 다시 무안이라 고쳐 나주에 속하게 하였고,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다.
신라시대 무안군은 함풍(咸豊: 지금의 咸平邑)ㆍ다기(多岐: 지금의 咸平郡內)ㆍ해제(海際: 지금의:務安郡 海際面)ㆍ진도(珍島: 지금의 珍島郡) 등 네 개 현을 포함하였는데, 이 지역은 현재 함평ㆍ무안ㆍ목포ㆍ화원반도(花園半島)를 지나 진도에서 서남해안의 다도해에 이르는 지역이다.
물내혜나 수입은 모두 ‘만(灣)’을 뜻하는 것으로 이 지역의 지형과 관계가 있다. 이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일찍부터 취락이 발달하였고, 당호리(唐湖里)라는 옛 지명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중국과의 무역거래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목포에 침입하여 배를 약탈하였다는 기록 외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데, 이것은 다도해의 많은 섬과 조류의 영향과 같은 자연적인 이점이 있던 때문인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목포ㆍ함평ㆍ영광과 함께 광주ㆍ나주를 방어하는 외곽기지의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