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민예(民藝)는 ‘민족극예술극장(民族劇藝術劇場)’의 약칭으로, 연극을 통한 인간성 존중과 전통극의 현대적 수용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제작극회(制作劇會)와 실험극장(實驗劇場)에서 활약하던 중견연출가 허규(許圭)가 중심이 되어 박규채(朴圭彩)·최불암(崔佛岩)·손진책(孫振策)·정현(鄭賢)·오승명(吳承明)·김흥기(金興基)·공호석·유명옥·이도련·이영윤 등 주로 문화방송국 탤런트와 실험극장 출신 배우들이 모여 창단하였다.
민예는 1973년 창립공연 김희창(金熙昌) 작「고려인 떡쇠」를 시작으로, 전통예술의 현대적 계승작업을 위하여 전단원이 탈춤·판소리·인형극·굿놀이 등의 민속적 예능을 전수하면서 우리 나라의 토속적 정서와 리듬을 살린 창작극을 주로 공연하였다.
1979년 서울 신촌에 ‘민예소극장’을 개관하여 민속예술을 현대극에 창조적으로 도입한 한국적 연극을 일관되게 공연하였으며, 방학중 워크숍을 열어 대학생 및 일반인에게도 전통예술을 교습하였다. 그러나 이후 신촌극장을 폐쇄하고 동숭동으로 이사하면서 소극장 위주의 창작극과 번역극을 공연하고 있다.
이 극단에서 공연한 창작가면극이나 창작인형극은 신극사에 남을 만한 연극작업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1980년대 극단 미추(美醜)가 창단된 이후에 민예의 핵심단원이었던 손진책·김성녀·윤문식 등이 탈퇴하면서 한동안 침체에 빠졌다. 이후 이 극단은 정현을 중심으로 창(唱)과 전통놀이가 어우러진 해학과 풍자의 창작극을 공연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소현(張素賢) 작「서울말뚝이」, 편극「심청이」, 심우성(沈雨晟) 채록「꼭두각시놀음」, 오영진(吳泳鎭) 작·장소현 각색「한네의 승천」, 허규·장소현 공동작「창포각시」, 허규 작「물도리동」, 이근삼(李根三) 작「위대한 실종」, 허규 작「바다와 아침등불」·「다시라기」등이 있다.
한편, 이 극단은 1977년「물도리동」으로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한 이래, 1978년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바다와 아침등불」, 1979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허규 작·연출「다시라기」, 1980년 제4회 대한민국연극제에 허규 작·손진책 연출「애로라기」, 1983년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노경식(盧炅植) 작·강영걸․심재찬 연출「오돌또기」, 1984년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최인석(崔仁碩) 작·강영걸 연출「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 1985년 제9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최인석 작·손진책 연출「쌀」, 1986년 제10회 대한민국연극제에 허규 작․강영걸 연출「물도리동」등으로 참가하였다. 또한 1989년 제13회 서울연극제에「혼종」, 1990년 제14회 서울연극제에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1991년 제15회 서울연극제에「당신들의 방울」, 1993년 제17회 서울연극제에「탈속」, 1995년 제19회 서울연극제에「그 여자의 소설」등으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2001년 제1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고추말리기」, 2002년 제2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장화홍련 실종사건」으로 참가하였다. 이 밖에도 2003년「바람의 딸」, 2004년「하얀 자화상」, 2005년「나비의 꿈」,2007년「선지」, 2009년「템프파일」·「지옥도」등을 공연하였다.
이 극단은 1975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창극「한네의 승천」으로 특별상, 1977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물도리동」으로 남우주연상·연출상·신인여우연기상·음악상,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와 제14회 백상예술대상에서「물도리동」으로 대통령상·백상대상·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1979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다시라기」로 희곡상,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정읍사」로 문화공보부장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였고, 1984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희곡상, 1990년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로 남우주연상, 1993년 제27회 백상예술대상에서「탈속」으로 연출상·희곡상·인기배우상, 1995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에서「그 여자의 소설」로 남자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특히 「다시라기」는 2003년에 ‘관객이 다시 보고 싶은 연극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민예극장의 전통예술의 현대극 수용작업은 1970년대 연극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현대극에 탈춤이나 창(唱)을 삽입하거나 설화나 무속에서 소재를 찾는 등 한국연극의 한 흐름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