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2년 1월 윤백남(尹白南)이 서울에 설립하였던 신파극단.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23년 2월에는 지방공연에서 상경하여 극단 재편성을 단행하였다. 전속작가로서 김정진(金井鎭)과 조일재(趙一齋)를 영입(迎入)하고, 윤백남은 무대감독으로서 직접 극단을 이끌었다. 윤백남 작 「제야의 종소리」 · 「파멸」 등과 윤백남 번안 「사랑의 싹」 · 「영겁의 처(永劫의 妻)」, 윤백남 각색 「진시황」 · 「희무정(噫無情)」 · 「대위의 딸」 등과 작자 미상의 「영생의 종」 · 「돌아오는 아버지」 · 「의(義)와 애(愛)」 · 「월급날」 등을 공연하였다.
이 연극들은 광무대(光武臺)와 단성사(團成社)에서 주로 공연되었는데, 이는 애초 계획하였던 중앙극장 건립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실패로 1924년 이후 윤백남은 신극운동에서 영화운동으로 옮겨갔고, 대신 안광익(安光翊)이 극단을 이끌어 「비파가(琵琶歌)」 등의 신파극을 공연하였다. 이 극단은 점점 신파극으로 후퇴하였고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결국 1931년 임서방(任曙昉) 작 「맹부(盲夫)」, 김영환(金永煥) 작 「부자와 양반」, 문의봉 작 「저주받은 사람들」, 하석조 작 「무어 빠진 연애」등의 공연을 마치고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
-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 『한국 희곡사 연표』(민병욱, 국학자료원, 1994)
- 『한국연극반세기』(강계식, 현대교육출판부, 1986)
-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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