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경번(景蕃), 호는 소요당(消遙堂). 할아버지는 박신동(朴信童)이고, 아버지는 성균생원 박중검(朴仲儉)이며, 어머니는 부사 이관식(李寬植)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가 헌납을 거쳐 사관(史官)이 되어 직필(直筆)로 당시의 세도가인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사게 되어 1539년 마전군수로 좌천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1544년 전적(典籍)·참교(參校)로 복직되었고, 이듬해 사복시정이 되었다가 안변부사로 나갔으며 그 뒤 내자시정·내섬시정·군자감정을 역임하였다.
당시 국정을 전단하던 이기(李芑)가 불렀을 때 만나보지 않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지어 자제들을 가르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괴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