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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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입덕문가」, 『삼암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덕후(德厚)
  • 삼암(三巖), 의재(毅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613년(광해군 5)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53년(명종 8)
  • 출생지충청북도 옥천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재열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7일
삼암유고 / 입덕문가 미디어 정보

삼암유고 / 입덕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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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입덕문가」, 『삼암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후(德厚), 호는 의재(毅齋) · 삼암(三巖). 옥천(沃川)에서 태어나 주계(朱溪 : 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충좌위 부사직(忠佐衛副司直) 박충현(朴忠賢)이며, 어머니는 의흥박씨(義興朴氏) 화순현감(和順縣監) 박준(朴埈)의 딸이다. 삼종숙(三從叔)인 박사종(朴嗣宗)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박이겸이 20세 되던 해에 영남을 주류하며 당시의 거유들을 찾아뵈면서, 조식(曹植)에게서는 출처(出處)의 의리를, 정구(鄭逑)에게서는 성리설(性理說)과 예악형정설(禮樂刑政說) 등을 듣고서는 집에 돌아와 삼암(三巖)에 정자를 짓고 후생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외가를 따라 성주(星州)로 이사하여 살기도 하면서 무주(武朱)와 성주에서 각기 향천(鄕薦)을 입었으나 벼슬에 나가지는 못하였고, 그의 나이 33세 때 암행어사 목장흠(睦長欽)의 천거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중용』과 『대학』에 특히 조예가 깊었으며, 그에서 얻어진 공부를 한글로 「입덕문가(入德門歌)」라는 가사(歌詞)로 옮겨 누구나 쉽게 학문을 터득하도록 읽혔으며, 또 세속이 술을 너무 쉽게 마시는 것을 금지하려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이의 폐단을 바로 잡으려 하였다.

이조참판(吏曹參判)이 증직되었고, 무주의 압계서원(鴨溪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삼암유고(三巖遺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삼암유고(三巖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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