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입덕문가」, 『삼암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후 외가를 따라 성주(星州)로 이사하여 살기도 하면서 무주(武朱)와 성주에서 각기 향천(鄕薦)을 입었으나 벼슬에 나가지는 못하였고, 그의 나이 33세 때 암행어사 목장흠(睦長欽)의 천거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중용』과 『대학』에 특히 조예가 깊었으며, 그에서 얻어진 공부를 한글로 「입덕문가(入德門歌)」라는 가사(歌詞)로 옮겨 누구나 쉽게 학문을 터득하도록 읽혔으며, 또 세속이 술을 너무 쉽게 마시는 것을 금지하려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이의 폐단을 바로 잡으려 하였다.
이조참판(吏曹參判)이 증직되었고, 무주의 압계서원(鴨溪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삼암유고(三巖遺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삼암유고(三巖遺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