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반남군으로 고쳐 야로(野老)와 곤미(昆湄)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 초에 현으로 강등시켰다가 현종 때 나주에 병합하였다. 조선 말기까지 반남면으로 존속하였다. 반남은 나주 서남쪽 50여리 지점에 있었는데, 이곳의 주산(主山)은 자미산(紫薇山)으로 삼별초(三別抄)의 난 때 둔전터로 성이 있었고, 산성 안에는 연병장과 샘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백제의 고분군이 산재해 있는데, 특히 신촌(新村)ㆍ대안(大安)ㆍ덕산(德山)ㆍ덕흥리(德興里) 일대의 7개 지역 30기의 고분에서는 금동관(金銅冠)ㆍ옹관(甕棺) 등이 다수 발굴되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반남의 옛 지명인 반나부리는 ‘큰 마을〔大村〕’, ‘큰 읍〔大邑〕’이란 뜻을 가진다. 이곳은 영산강 유역의 나주평야에 자리잡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창(倉)이 있었고 무안과 영암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영산강의 몽탄포(夢灘浦)를 거쳐 서해지역과 수상교통이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