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삼현현(三峴縣, 또는 密波兮)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삼령현(三嶺縣)으로 고쳐 양록군(楊麓郡)의 관할하에 두었다. 940년(태조 23)방산현으로 고쳤고, 현종 때 춘주(春州)에 귀속시켰다가 뒤에 회양(淮陽)에 이속시켰다.
1424년(세종 6) 양구군의 속현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방산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양구에서 이곳을 거쳐 문등령(文登嶺)을 넘으면 금강산의 입구인 장양(長楊)에 이르게 되어, 당시에는 서울에서 금강산을 갈 때 북한강을 따라 춘천을 거쳐 이 길을 많이 이용하였다.
예로부터 이 지역을 본방원(本芳園)·본방산(本芳山)·방원(芳園) 등으로 불렀는데, 이는 주위의 지형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