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 투각 모란당초문 항아리

  • 예술·체육
  • 작품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조선 후기의 백자 항아리.
이칭
  • 이칭백자투조모란문호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백자 청화투각모란당초문 항아리 미디어 정보

백자 청화투각모란당초문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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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백자 항아리.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직립된 입부분에 어깨에서부터 급히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모습의 항아리로, 내외(內外)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안의 것은 문양이 없으며 밖의 것은 투각수법(透刻手法)으로 몸체 전면에 활짝 핀 모란과 그 줄기·잎을 표현하였으며, 어깨부분에는 청화(靑華 : 중국에서 나는 푸른 물감)로 간결한 당초문대(唐草文帶)를, 허리 밑부분에는 양각(陽刻)의 여의두문(如意頭文)과 넓게 홈이 난 양각대선(陽刻帶線)을 둘렀다.

유색(釉色)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가 전면에 고르게 시유(施釉)되었으며 은은한 광택이 있다. 굽다리는 안바닥을 깎아 세웠으며, 가는 모래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유색이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인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되는 경기도 광주군 분원요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필통 등에 다양하게 투각되던 모란문양의 표현과 여의두문의 존재로 보아 1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항아리에 이처럼 복잡한 투각의 문양이 있는 것은 희귀한 예로서, 특별한 용도에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항아리 아래 부분에는 몇 군데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 『국보』-백자·분청사기-(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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