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은 중국 명필들의 서법을 다양하게 수용하여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는데, 간혹 근거가 애매한 서풍을 구사한다고 하여 그의 글씨를 속되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서첩에서 밝혔듯이 윤순은 글씨에 있어서 만호제력(萬毫齊力), 즉 중봉(中鋒)을 기본으로 창경발속(蒼勁拔俗)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우리나라의 속된 글씨를 계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서첩은 윤순의 서예연구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백하묵묘첩(白下墨妙帖)」 등 그의 진적(眞蹟)을 통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아울러 그의 글씨에 대한 서평을 통해서도 짐작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