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에는 대진(大津)이라고 불리었다. 진도군에 속하는 여러 섬들 중에서 본도인 진도(珍島)의 동부 해안가에 위치하여 진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진도는 국방상 중요지역의 하나였는데, 특히 일본과 중국을 경계하는 데 중요한 지역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는 이순신(李舜臣)과 관련이 깊은 수군영(水軍營)이 배치되어 있었던 곳이며, 순천에서 시작된 봉수(烽燧)가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였다. 벽파진은 수진장(守津將)이 한 사람 배치되어 관할하고 있었으며, 해남현(海南縣)의 삼기원(三歧院)으로 통하는 대로의 길목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도 교통의 요지로서의 기능은 지속되어 목포∼완도간, 목포∼제주간을 연결하는 여객선의 기착지로서 진도와 목포ㆍ제주ㆍ완도 등지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이순신의 전첩비가 위치하고 있어 국방상 중요 지역이었고 일본과의 7년 전쟁 동안 격전지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벽파진은 백제 때에 인진도군(因珍島郡)에 속하였는데, 신라 경덕왕 때 진도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무안군(務安郡)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나주(羅州)의 관할하에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해진군(海珍郡)에 속하였다. 그 뒤 해진군에서 분리되어 전라남도 진도군 고이면(古二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고이면에서 고군면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