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완보(完甫)이고, 호는 화재(和齋)이다.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이[卞猫]', '변닭[卞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변상벽은 일상에서 관찰한 동물의 생태 묘사에 뛰어났다. 정극순(鄭克淳, 1700~1753)의 『서윤공유고(庶尹公遺稿)』 「변씨화기(卞氏畵記)」에는 변상벽이 약관에 고양이 그림으로 한양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의 그림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백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나무를 기어오르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와 나무 아래에서 몸을 웅크린 채 위를 쳐다보는 고양이를 그린 「묘작도(猫雀圖)」는 변상벽의 대표작으로, 고양이는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어미 닭이 병아리들에게 먹이 주는 장면을 그린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 그의 주요작 중 하나이다. 절파(浙派) 주1을 토대로 형형색색의 화초를 그려 넣은 변상벽의 영모화초화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전신(傳神)주2을 중요시하는 초상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당대의 주3로 불렸다. 「윤봉구초상(尹鳳九肖像)」[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윤급초상(尹汲肖像)」[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변상벽의 대표적인 초상화로 꼽힌다.
그 외,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며 1763년(영조 39)과 1773년(영조 49)에 영조 어진 제작에 참여한 사실도 확인된다. 이때의 공으로 귀산첨사, 곡성현감 등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