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창간한 『천주교회보』의 영향을 받아, 당시 청년 연합회장이던 박준호(朴準鎬)를 비롯하여 정지용(鄭芝鎔)·김교주(金敎周)·이의필(李義弼)·김순석(金順石) 등 젊은 가톨릭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발달, 생활개선, 종교도덕의 보급 등의 취지로 창간되었다.
1933년 모든 잡지를 통폐합하여 새로운 청년지를 창간한다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그 해 5월 자진 폐간할 때까지 만 6년 동안 71호가 발간되었다. 내용은 교리를 주로 하여 소설·호교·역사·문예 등과 칼럼·고십·뉴스 등을 통한 사회문제 및 일제에 대한 비판문 까지도 취급하였다.
특히 뉴스난에는 서울과 지방교회의 소식·현황사진 등을 게재하여, 일제 하의 1920, 1930년대 교회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