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10월 10일 휘드모어·세릴로스 등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과 양전백, 이성삼 등 국내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평안북도 선천에서 예수교보성여학교로 설립하였다. 초대 교장에는 미국 선교사 주이스(한국명 최미례)가 취임하였으며, 입학자격은 소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소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2년제 예비과를 두었다.
초창기의 학생 수는 30여 명이었고, 교과목은 산술·성경·한문·작문·역사·지리·과학·심리학·동물학·식물학·윤리·성서지리 등이었다. 1910년에 제1회 졸업생 8명을 배출하였고, 1915년 일제가 「개정사립학교규칙」에 의하여 성경 시간과 기독교 종교의식을 금지시킴에 따라 여자고등보통학교로의 승격을 거부하고 각종학교로 남게 되었다.
3·1운동 때에는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와 함께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가운데 일제의 무차별 사격으로 수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뒤에도 신사참배 거부 등 각종 항일운동에 앞장서서 활약하였다. 1935년 보성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40년 4년제 8학급으로 개편하였다.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경영권이 박탈되면서 선천여자상업학교(宣川女子商業學校)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50년 4월서울로 이전하여 보성여자중고등학교로 재개교하였으며, 재건 초대 이사장에 한경직(韓景職) 목사, 초대 교장에 김양선 목사가 취임하였다. 6·25전쟁으로 부산 피난 교사에서 수업을 하다가 서울 수복 후 1953년 9월 서울 영락교회의 부속건물을 교사로 사용하였고, 1955년 4월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80년 체육관, 1984년 생활관을 준공하고, 2004년 11월 일본 에이와여학교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2009년 현재 24학급에 793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59명이 재직하고 있다.
교훈은 ‘진실·사랑·거룩’이다.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고 지덕체를 함양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가는 참된 한국 여성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해서 기독교적 인성교육, 충실한 정보교육, 내실있는 독서교육, 특별활동 활성화 등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29년 제1회 청년하령회를 개최한 이래 매년 휴가를 이용해서 신앙과 지식 및 체력 향상을 위한 수련회와 순회 음악전도회 등을 실시하였고, 필드하키부·합창부·현악부 등이 과거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바 있다.
매주 주말에 전통문화 체험, 육군사관학교 견학, 독서문화여행, 방학기간 중에는 해외 문화탐방 등의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일본의 에이와여자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생 교환방문 등의 교류를 갖고 있다. 풍물부·핸드벨부·문예부·미술부·도서부 등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9월에는 보성축제가 열린다. 교지 『보성(保聖)』을 정기적으로 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