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계비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후원으로 1906년 5월에 엄주익(嚴柱益)이 한성의 전동(磚洞)에 설립하였다. 순헌황귀비는 당시에 여자교육기관이 없음을 우려하여 동생인 엄주익에게 여학교 설립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순헌황귀비의 위임을 받은 엄주익은 연령 11세 이상 25세 이하의 사족(士族) 여성 20여 명을 모집하여 여학교를 열었다.
양반가의 여성만을 입학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귀족여학교로 초기에는 ‘귀족여학교’ 또는 ‘화족(華族) 여학교’라 불리기도 하였다. 일본인 부인인 연택(淵澤)·촌정(村井)·정출(井出) 등 3인과 한국인 부인 김소사 등 4인의 여교사로 하여금 학생을 가르치게 하는 한편, 기숙사를 설치하여 가난한 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초기 교원은 정경부인인 이정숙(李貞淑)이 교장이었고, 일본인 여자인 연택승혜(淵澤勝惠)가 학감 겸 주임교사, 촌정·정출·김소사 등 3인이 교사로 있었다. 국한문·습자·작문·수신·일문(日文)·독서·산술·조화(造花)·편물·음악·체조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1907년에 교명을 명신여학교(明信女學校)로 개명하고, 1908년 12월 28일 「고등여학교령」에 의거하여 명신고등여학교로 개편하였다가 1909년 7월부터 숙명고등여학교(淑明高等女學校)로 또다시 교명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숙명여자고등학교로 존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