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미(李嵋). 아버지는 중종이며, 어머니는 경빈박씨(敬嬪朴氏)이다. 부인은 현감 윤인범(尹仁範)의 딸이다.
윤비가 세자(世子: 仁宗)를 낳고 죽은 뒤 경빈박씨는 아들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야망을 가졌다. 마침 1527년(중종 22) 세자의 생일에 쥐를 잡아 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져서 동궁(東宮)의 북정(北庭) 은행나무에 걸어 세자를 저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경빈박씨가 혐의를 받아 작호(爵號)를 빼앗기고 서인(庶人)으로 되어 귀양갔다가 1533년 모자가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1541년(중종 36)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김희(金禧)가 사건을 조작한 진범으로 밝혀져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