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신은 1896년에 박기종(朴琪淙)이 설립한 개성학교(開成學校)이다. 1895년에 부산경무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박기종은 1882년 김홍집(金弘集)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역관(譯官:통역을 맡은 관리)으로 수행한 것을 비롯하여 그 뒤 2차에 걸친 일본 시찰에서 일본의 신교육제도에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부산에 근대식 학교의 설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에 이내옥(李乃玉)·배문화(裵文華)·변한경(邊翰敬)·이명서(李命瑞) 등과 협의하여 사립부산개성학교(私立釜山開成學校) 설립을 결의, 현재 봉래초등학교의 남쪽 언덕 위에 건물 6동을 건립하고 1896년 2월 학부의 인가를 얻어 3월에 100여 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초등과·중등과·고등과의 3과로 편성하였으며, 초등과는 다시 전기와 후기로 나누고 각각 3년의 수업연한으로 전·후기를 합쳐 전과(全科)라 하였다.
전기는 수업연한 3년에 수신·독서·회화·작문·습자·산술·지리·역사·한문·체조의 교과를, 후기는 수업연한 3년에 이과·도화 등의 교과를 추가하였다. 그 뒤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자 여러 차례 학부에 청원하여 1897년 공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공립부산개성학교로 개칭하였다.
1898년에 초등과 제1회 졸업생 6명을 배출하였다. 1907년 정부로부터 관립 이관의 통첩을 받자 이를 반대하면서 사립보조교로 해 줄 것을 청원, 사립부산개성일어학교(私立釜山開成日語學校)로 고쳐 종전대로 운영하였으나 정부의 보조금 중단으로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09년 4월에 다시 공립으로 전환되어 중등과는 공립부산실업학교, 초등과는 공립부산보통학교로 각각 개편되었다.
공립부산보통학교는 같은 해 6월에 학생 223명으로 개교하여 1910년 3월에 제1회 졸업생 27명을 배출하였으며, 1938년 4월에 부산봉래공립심상소학교, 1941년에 부산봉래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교명을 봉래국민학교로 개칭하였고, 1984년 구교사를 헐고 현재의 교사를 신축하였다. 1996년 3월에 봉래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5년 10월에는 봉래 역사관을 개관하였다.
2008년 3월 현재 21학급에 재학생 528명, 교원 36명이다. 졸업생은 98회 총 3만 5,591명을 배출하였다.
‘착하고 튼튼하며 아름다움을 가꾸는 슬기로운 어린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기초 기본학력의 정착,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한 인성교육,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 평가 방법 개선 및 다양화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특색사업으로 '더불어 배우는 취미교실 운영을 통한 나홀로 아동의 여가시간 활동 방안과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예절 바른 어린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나홀로 아동의 여가시간 활용 사업은 지역 여건상 회사원이나 자영업의 비율이 높고 맞벌이 가정이 다수인 현실을 감안 방과후 교육, 가정 학습, 방과후 자율 활동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