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성 ()

목차
인문지리
유적
경상북도 영주시 부근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왕 당시 축조된 성곽. 산성.
목차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근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왕 당시 축조된 성곽. 산성.
내용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와 있다. 봉산성을 영주지방의 지명으로 추측하는 것은 『대동여지도』에 영주 동쪽 10리 지점에 봉산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 지역이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내해왕 때 백제군이 봉산(烽山) 아래로 침입하자 연진(連珍)이 이들을 격파하여 천여급(千餘級)을 벤 다음 봉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255년(첨해왕 9)에도 백제군이 침입하였고, 266년(미추왕 5)에도 백제군이 침입한 것을 성주 직선(直宣)이 격퇴하였다고 한다.

백제가 번번이 선제공격을 한 것은 당시 신라의 국력이 미약하였던 점도 있으나 백제로서는 남한강 상류지역의 안전을 도모하고 신라의 세력을 소백산맥을 경계로 묶어두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뒤에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백산맥의 관적령(串赤嶺)을 넘어 영춘(永春)ㆍ영월(寧越)의 영서 내륙지방을 확보하여 영동지방과의 연계체계를 갖추어나가는 것을 보아 봉산성이 신라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지지(大東地志)』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