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와 있다. 봉산성을 영주지방의 지명으로 추측하는 것은 『대동여지도』에 영주 동쪽 10리 지점에 봉산이라는 지명이 있고, 이 지역이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내해왕 때 백제군이 봉산(烽山) 아래로 침입하자 연진(連珍)이 이들을 격파하여 천여급(千餘級)을 벤 다음 봉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255년(첨해왕 9)에도 백제군이 침입하였고, 266년(미추왕 5)에도 백제군이 침입한 것을 성주 직선(直宣)이 격퇴하였다고 한다.
백제가 번번이 선제공격을 한 것은 당시 신라의 국력이 미약하였던 점도 있으나 백제로서는 남한강 상류지역의 안전을 도모하고 신라의 세력을 소백산맥을 경계로 묶어두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뒤에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백산맥의 관적령(串赤嶺)을 넘어 영춘(永春)ㆍ영월(寧越)의 영서 내륙지방을 확보하여 영동지방과의 연계체계를 갖추어나가는 것을 보아 봉산성이 신라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