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5년 경성부가 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에 세웠던 부립극장(府立劇場).
연원 및 변천
건물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건평은 1,717평, 대강당 1,800석, 중강당 400석, 소강당 160석 규모였다. 이외에도 담화실·집회실·부속실·누간(壘間)·특별실·식당·이발실까지 갖춘 근대식 다목적 회관으로 당시에는 드물게 냉·난방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해방 후 미군정이 임시로 사용하다 1949년 서울시 소유가 되었고, 1950년 4월 29일 국립극단이 창단되면서 국립극장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립극단이 피난지 대구로 이전하자 서울 수복 뒤 1954년 6월, 제 3대 국회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1970년대 중반에 국회가 여의도의 새 의사당으로 이사감으로써, 부민관은 시민회관으로 사용되었고 1976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면서 그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199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기능과 역할
한편, 이곳은 ‘부민관폭파 의거’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1945년 7월 24일 대한애국청년단원 강윤국(康潤國)·조문기(趙文紀)·유만수(柳萬秀) 등이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동남아, 일본 괴뢰정부의 대표가 참석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곳을 폭파한 사건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유민영, 태학사, 1998)
- 『한국극장사』(유민영, 한길사, 1982)
- 『경성회보』(1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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