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10일 박수형(朴洙衡)·하원준(河元俊) 등이 부산시 대청동 4-36에서 일제강점기의 『부산일보』 사옥과 시설을 인수받아 창간하였다. 사시는 “국민의 행복에 헌신한다. 진실을 공평히 보도한다. 평론의 중정(中正)을 관철한다. 청신한 기풍을 존중한다.”였으며, 부산·경상남도의 향토지로서 ‘내 고장 대변지’를 표방하였다.
사장 겸 편집인은 박수형, 발행인은 하원준이 맡았으며, 체제는 B4판 2면제였다. 창간 후 운영난 극복책으로 한때 운영동인체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1949년 7월김지태(金智泰)가 새로운 사주가 되어 배대판 2면으로 확대하고, 같은 해 9월 부산일보운영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10월『대중신문(大衆新聞)』을 병합함으로써 본궤도에 들어섰다.
1951년 1월 미8군 『성조지(星條紙)』에 사옥과 시설이 징발되었다가 1953년 2월 되돌려 받았으나, 그해 11월 27일 부산역 앞 대화재로 사옥과 시설이 전소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1958년 9월 26일부터 지역신문 최초로 조·석간제를 실시하였고, 1958년 11월부일장학회(釜日奬學會)를 설립하였으며, 1959년 4월 국내 최초의 민간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을 개국하여 한국신문사상 최초로 매스컴의 이원화를 시도하였다.
5·16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5월『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및 자매기관인 한국문화방송이 5·16장학회(지금의 정수장학회)에 귀속되었다. 1963년 2월 20일 사옥을 부산시 중구 중앙동4가 53-17로 이전하여 최신자동복사기·자동부식기·사진제판시설·오프셋인쇄기 등 시설의 현대화를 꾀하였다. 1980년 12월 1일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국제신문(國際新聞)』을 흡수, 통합하면서 제호를 한글에서 한자로 바꾸었다.
자매지로는 1983년 11월 6일 창간한 주간 『일요건강』(1986년 11월 9일 ‘주간부산’으로 개칭. 1989년 9월 10일 휴간)이 있었다. 1984년 12월 31일 현재의 사옥인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1-10으로 이전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 성장의 보폭을 넓힌 부산일보는 1992년부터 다른 지역 신문사들과 공동으로 워싱턴·도쿄·파리 등에 특파원을 파견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신문』(1992년)·『서일본신문』(1996년) 등의 해외신문과 자매결연을 하여 기사교류를 추진했다. 또, 컴퓨터 조판체제(CTS) 전면실시(1993년)와 종합정보서비스시스템 ‘피스넷(PEACE-NET)’ 개통(1996년)으로 정보화의 흐름에 동참했다.
1994년 12월에는 금정 제2사옥을 신축하여 독자들이 보다 신속하게 신문을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1998년 5월 6일부터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하였고, 2004년 4월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제호를 한글로 바꾸고 서체와 심벌을 교체하였다. 2004년 12월에는 48면 발행에 36면 컬러인쇄가 가능한 컬러오프셋윤전기를 도입하여 더 좋은 지면을 빠른 시간에 인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 자회사 부일IS, 부일인쇄, BInet, 부일E&E를 차례로 설립해 재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주요 행사로는 진주∼부산역전마라톤대회를 비롯하여 부산시장기쟁탈전국대학야구대회·화랑대기쟁탈전국고교야구대회·청룡기쟁탈전국중고교축구대회·대통령패쟁탈바둑최고위전·전국아마바둑최고위전 등이 있다.
2009년 2월 11일 지령 20,000호를 발행하였으며, 2009년 3월 현재 뉴스제휴를 맺은 국외언론으로는 일본의 『서일본신문』이 있다. 주 발행면수는 192면이며, 국내보급망으로는 지사 142개와 지국 99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