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적인 묵란도(墨蘭圖)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로 많이 불린다. 그는 1809년(순조 9), 아버지 김노경(金魯敬, 17661840)의 연행(燕行)에 자제군관으로 동행하여 청나라의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으로부터 금석학(金石學)과 서화를 접하며 서화가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김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연루되면서 김정희도 1840년(헌종 6)부터 1848년(헌종 14)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1851년(철종 2)에는 친구였던 영의정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의 일에 다시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김정희는 1852년(철종 3) 유배에서 풀려나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서 노년기를 보내며 생을 마무리했는데, 「부작란도」는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이다.
「부작란도」는 세로 92.9㎝, 가로 47.8㎝ 크기이며,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졌다. 화면은 옅고 메마른 먹으로 그린 난초 한 포기를 중심으로 짙은 먹으로 쓴 제문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제문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쓴 것으로,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방식,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된 연유 등을 서술하였다. 화면 맨 위쪽에는 만향(曼香)의 제문이, 오른쪽 중간에는 구경(漚竟), 왼쪽 아래에는 선락노인(仙𩂣老人)의 제문이 있다. 이 중 만향의 제문에 “내가 난초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인데, 우연히 성품 속 하늘 이치를 그려냈구나. 문을 닫고 찾고 찾고 또 찾던 곳, 이는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일세.”라는 내용이 있어 「불이선란도」로 많이 일컬어진다.
이 작품에는 김정희가 난을 그릴 때 운용했던 삼전법(三轉法)이 잘 구현되어 있다. 오른쪽 구경의 제문은 초서(草書)와 예서(隸書)의 기이한 법으로 그렸다는 내용으로, 이는 명대(明代)의 문인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화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작란도」는 시서화 합일의 경지를 보여주며, 주1과 비백(飛白)의 효과가 뚜렷한 난잎의 묘사에서도 서예적인 필묵이 뚜렷하다.
「부작란도」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추구했던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최근의 조사에서 총 15과(顆)의 인장이 확인되었다. 김정희가 「불이선란도」를 제작한 당시에 날인한 인장은 총 5과이고, 나머지는 김석준(金奭準, 18311915), 장택상(張澤相, 18931969),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소장인(所藏印)이다. 이 작품은 고(故) 손창근 씨의 소장품으로 전해오다가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고, 202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