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명은 『삼국사기』의 내물이사금에 관한 기록에 나온다. “364년(내물왕 9) 4월 왜병이 크게 쳐들어오니 왕이 듣고 이를 대적하지 못할까 하여, 풀로 만든 사람〔草偶人〕 수천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병기를 지니게 하여 토함산 밑에 늘여 세우고 용사 1,000명을 부현(斧峴)ㆍ동원(東原)에 잠복시켜 두었더니, 왜인이 수적으로 우세함을 믿고 진격해오는지라 복병(伏兵)을 발하여 적을 쳐서 물리쳤다.”고 한다.
신라 때는 동해안의 동해천(東海川) 지역에서 약장현(約章縣)을 거쳐 동산령(東山嶺)을 넘으면 토함산을 지나 경주의 낭산(狼山)에 이르게 되었다. 문헌상에 나타나는 왜인의 침입로는 이 길을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