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청동기시대의 무기 혹은 제기(祭器).
개설
내용
경부(莖部)가 그대로 연장되어 검신의 중앙부에서 등대〔背〕를 이루며 인부(刃部)의 돌기부와 병행한 등대부분에는 마디가 약간 도드라져 있다. 이 도드라진 마디는 비파형동검을 다른 동검들과 구분지을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마디 위쪽의 등대부분에는 등날〔稜角〕이 서 있는데 경부쪽으로는 대부분 등날이 서 있지 않다.
검파부(劍把部)는 ‘ㅗ’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손에 쥐어지는 부분은 속이 빈 나팔형으로 생겨 검의 경부를 삽입해 결합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검신과 검파가 따로 주조되어 결합시키는 조립식은 중국식 검 및 오르도스식 검과는 다른 뚜렷한 특징이며 한국식 동검에도 이어진다.
검파의 두부(頭部)는 대부분 평면이 호콩모양인 테두리를 가졌다. 속이 비어 있어 이 속에 같은 형태의 검파두식(劍把頭飾)을 맞추게 되어 있다. 이 검파부에는 삼각문(三角文)·뇌문(雷文) 등의 무늬를 베푼 것이 많다.
이 동검은 검파부의 형태에 의해 세 가지 형식으로, 검신의 형태에 의해 세 네 가지 형식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Ⅰ·Ⅱ기의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경부 끝쪽에 홈이 파인 형태가 우리 나라의 서남부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어 새로운 형식으로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내에서는 현재까지 약 40여 자루가 알려져 있다. 함경도 지방을 제외하고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주로 서부 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유적의 분포가 중국의 동북 지방과 한반도 서부 지방에 조밀한 것은 당시에 이 지역이 동일문화권에 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적의 성격은 석관묘·고인돌(지석묘) 등이다.
최근까지 한반도에서는 고인돌에서 출토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왔는데, 전남지방 보성강유역과 여수반도의 남방식(南方式) 고인돌에서 수 점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해방 전에 비파형동검은 그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아서 세형동검의 이형(異形)에 지나지 않고, 전형적인 세형동검보다 늦은 형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 차오양 쓰얼타이잉즈에서 한반도 세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의 조형(祖形)으로 보이는 비파형동검과 거친무늬거울〔粗文鏡〕이 출토되고, 부여 송국리 유적 등 한반도 여러 곳에서 비파형동검이 발견되면서, 명실공히 세형동검에 앞서는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동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반도 내에서 출토된 동검은 현지에서 직접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요령식 동모 및 비파형동검과 세트를 이루는 부채도끼〔扇形銅斧〕의 거푸집〔鎔范〕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이 비파형동검문화는 고조선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뒤의 한국식 동검〔細形銅劍〕문화는 이 동검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다. 공반유물로는 동포(銅泡)·동착(銅鑿)·선형동부·청동도자(靑銅刀子) 등을 들 수 있다.
부여의 송국리 석관묘에서는 마제석검·마제석촉 등이 반출되어 소위 마제석검의 한국식 동검 모방설을 뒤엎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문화의 주인공을 중국 동북부의 동호족(東胡族)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연대에 대해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동검의 한반도 유입시기는 서기전 8세기설부터 서기전 4세기설까지 여러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참고문헌
- 『조선고고학전서(고대편)』(박진욱,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
- 「세형동검의 형식분류와 그 변천에 대하여」(이청규, 『한국고고학보』13, 한국고고학회, 1982)
- 「부여송국리 요녕식동검출토 석관묘(扶餘松菊里 遼寧式銅劍出土 石棺墓)」(김영배·안승주, 『백제문화(百濟文化)』7·8합집, 공주사범대학백제문화연구소, 1975)
- 「한국청동유물(韓國靑銅遺物)의 연구(硏究)」(윤무병, 『백산학보(白山學報)』12, 1972)
- 「한국청동단검의 형식분류」(윤무병, 『진단학보』29·30, 진단학회, 1966)
- 「십이대영자(十二台營子)의 청동단검묘(靑銅短劍墓)」(김원룡, 『역사학보(歷史學報)』16,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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