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화원(畵員) 김두량(金斗樑)이 1744년(영조 20), 그의 나이 49세 때 그의 아들로 역시 화원이었던 김덕하(金德夏)와 함께 그렸다.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춘하도리원호흥경도(春夏桃梨園豪興景圖)」는 세로 8.4㎝, 가로 202㎝ 이고, 「추동전원행렵승회도(秋冬田園行獵勝會圖)」는 세로 7.2㎝, 가로 182.9㎝로 크기가 약간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계산수도」 외에 「사계풍속도(四季風俗圖)」 또는 「전가락사도권(田家樂事圖卷)」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표제(表題)에 의해 김두량이 도본(圖本)을 그리고, 설채(設彩 : 색을 칠함)는 김덕하가 했음을 알 수 있다. 봄·여름 장면인 「춘하도리원호흥경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을·겨울 장면인 「추동전원행렵승회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특이한 형식이며 2권의 두루마리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춘경(春景)은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도리원(桃梨園)에서 열리는 연회로 가는 장면과 정원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다. 하경(夏景)은 집안에서 바둑을 두거나 물가 나무 밑에서 쉬는 등 납량(納凉 :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즐김)하는 광경을 중심으로 그렸다. 추경(秋景)은 추수와 타작 장면을, 동경(冬景)은 겨울철 옥내 생활과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각 장면은 두루마리의 순서대로 절반씩의 비중을 차지하는 8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장면들이 좁고 긴 횡권(橫卷 : 두루마리) 속에 여백 없이 꽉 차게 배열되었다. 하지만 비좁거나 옹색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부드럽고 온화한 필묵법 및 담채, 산형(山形)과 짧은 피마준(披麻皴),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명나라 오파(吳派) 화가들이 즐겨 구사한 요소가 보인다. 인물과 가옥 표현에서는 18세기 초엽에 수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중국 화보(畵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리고 타작 장면과 벼를 까부는 장면에서는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의 영향도 확인된다.
「사계산수도」는 오파 화풍의 요소를 비롯해 『개자원화전』과 『패문재경직도』의 수용 양상, 그리고 조선 후기 풍속화의 유행을 예시하는 선구적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김두량이 「사계산수도」와 같은 해에 그린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에서는 전통적 화풍을 추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사계산수도」의 화풍은 그것과 매우 다른 특징을 보여 김두량이 다양한 화풍을 구사할 수 있는 화원이었음을 말해준다. 김덕하는 이외에 다른 작품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의 작품 경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