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과 전덕기(全德基) 등 4인은 1904년 9월에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를 조직하여 교육과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민교육회는 학교의 설립, 문명적 학문에 응용할 서적의 편찬과 번역, 본국사기와 지지 및 고금 명인 전적(名人傳蹟)을 수집하고 널리 펴내는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국민교육회는 야학교로 보광학교(普光學校)를 설립해 근로청년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계몽하고, 1906년 9월에 한남학교(漢南學校)도 설립하였다. 또한 국민교육회는 1905년 12월에 국민의 지식을 발달하게 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국민사범학교를 한성에 설립하였다.
국민사범학교는 1905년 12월 20일에 신입생을 모집하여 교사양성교육을 실시하였는 바, 입학자격은 25세부터 35세까지로 하고, 입학시험 과목은 독서·산술·작문(국·한문 교작)이며, 수업연한은 6월∼1년으로 하고, 교과목은 성경·내외국지지·역사·산술·물리·문전(文典)·국가학(國家學)·교육학·도화·작문·체조 등이었다.
국민사범학교는 1906년 11월에도 학생을 모집하였는데, 이때에 모집한 학생정원은 70명이었다. 국민사범학교는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재정이 부족하여 학교의 운영이 어려운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06년 8월에 당시 내부의 지방국장으로 있던 유성준(兪星濬)과 참서관(參書官) 석진형이 각각 기부금을 내고, 대신이던 이지용(李址鎔)이 모든 경비를 담당하게 되어 폐교의 위기에 있던 국민사범학교는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