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대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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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후기 문신 · 학자 송시열의 저술 가운데 춘추 정신이 담긴 글을 모아 엮은 번역서. 언해서.
이칭
이칭
사문대의(斯文大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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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 학자 송시열의 저술 가운데 춘추 정신이 담긴 글을 모아 엮은 번역서. 언해서.
내용

3권 3책. 필사본. 표제는 ‘사문대의(斯文大義)’로 되어 있다. 필사 연대와 필사자는 미상이나, 편차의 내용과 성격으로 보아 정조 연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서각 도서에 귀중본으로 있다.

권1에는 후동문답(後洞問答), 권2에는 강상문답(江上問答), 권3에는 효묘우암독대설화(孝廟尤庵獨對說話)·기해봉사(己亥封事)·진수당주차(進修堂奏箚)·청이효종대왕묘위세실소(請以孝宗大王廟爲世室疏)·기사오월유소(己巳五月遺疏)가 수록되어 있다.

「후동문답」은 송준길(宋浚吉)의 제자인 송규렴(宋奎濂)이 송시열과 윤증(尹拯)간의 노·소 분당에 관한 내용을 논한 것이다. 「강상문답」은 권상하(權尙夏)의 제자 한홍조(韓弘祚)가 스승과 제자들이 회니시말(懷尼始末) 등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독대설화」는 1659년(효종 10) 송시열이 효종과 독대해 나눈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북벌(北伐)·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 문제 등의 내용들이 있다. 「독대설화」의 원본은 『송서습유(宋書拾遺)』에 ‘악대설화(幄對說話)’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기해봉사」는 ‘기축봉사(己丑封事)’를 잘못 쓴 것으로, 효종이 즉위하던 1649년에 왕에게 시무(時務) 및 유학의 정치적 이상을 13개 조항에 걸쳐 개진한 것이다. 마지막 조항인 “정치를 잘해 오랑캐를 물리치라(修政事以攘夷狄).”는 조항만을 발췌, 번역했는데, 춘추대의 정신에 입각해 병자호란의 국치를 설욕할 것을 주창한 글이다.

「진수당주차」는 1681년(숙종 7)에 송시열이 숙종에게 올린 글이다. 선조의 ‘재조번방(再造藩邦)’과 효종의 ‘복수설치(復讐雪恥)’ 정신을 계승해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건의한 내용이다.

「청이효종대왕묘위세실소」·「기사오월유소」는 1683년과 1689년에 각각 올린 소이다. 효종의 자주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으로, 효묘(孝廟)의 큰 뜻을 높여야함을 주청한 글이다.

『사문대의록』은 궐내에서 읽혀오던 일반 소설류와는 달리 대의명분과 국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송시열의 춘추 정신이 담긴 글을 한글로 옮겨 궁중 내전에서까지 읽게 한 것으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사문대의록(斯文大義錄)」(유승국, 『한국사상과 현대』, 동방학술연구원,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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